우리 아빠는 참 무뚝뚝한 사람이다. 무정하진 않다. 분명 우리를 사랑하긴 하는데, 표현 방식과 사랑의 언어가 나와는 달라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빠를 색깔로 표현하면 네이비색이다. 어둡고 칙칙한 회색이나 검은색은 결코 아니다. 분명히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어느 구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회사 점퍼 하나, 양말 하나, 그리고 네이비색.
내 이상형이 리액션이 풍부하고, 표현을 잘하고, 잘 웃고, 말을 할 때 표정을 잘 쓰고, 유머러스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된 건 아빠 덕분이다. ‘덕분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에 나열한 모든 것들을 반대로 하면 우리 아빠다. 말수가 적어도 책임감 있는 모습과 가장으로서 든든한 면모는 존경스럽지만, 연애 상대로는 꽝이다. 가끔 이 주제로 엄마와 토론을 펼친 적도 있다. 아빠의 아쉬운 점으로 시작한 엄마의 한탄을 듣다가 내가 엄마 편을 들 때면, ‘그래도 내 눈엔 아빠 아직도 멋있다. 아빠 같은 사람 없데이-’라는 말로 항상 마무리를 지어서 나를 힘 빠지게 했다.
고백하자면, 아빠가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친구들은 주말마다 휴일마다 방학마다 수영장이나 놀이공원 등등 어딘가를 다녀왔다. 그 자랑을 들은 어린 나의 생각 회로에서는 이러했다. 그 먼 곳을 가려면 보통 운전은 아빠가 해주셨을 거고, 아빠가 주말 계획을 짰을 거고, 그럼 가족 나들이의 총책임자는 그 애들의 아빠였을 것이다. 그럼 우리 아빠는?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아빠에게 괜히 떼를 썼다. ‘아빠, 나도 수영장 가고 싶어요’ ‘아빠 물놀이 가요.’ ‘아빠 우리도 놀이공원 가면 안 돼요?’ 그런데 아빠는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피곤해서, 다음에-를 반복했고, 하루는 수영장을 가기로 약속 한 날에 도저히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초조해진 나는 물었다. ‘아빠 우리 오늘 수영장 간다면서요?!’ 그랬더니 아빠는 우리 집의 낡은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더니, 먼지 묻은 비치볼을 샤워기로 씻고, 그대로 입으로 후-우 불어서 물 위에 통- 하고 띄웠다. 결국 그게 수영장이라는 것이다. 나는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빠가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태어났다. 원체 어리광이 없었던 나를 부모님이 든든하게 생각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일까, 되려 나의 조그마한 실수나 투정에는 엄격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동생의 말이나 행동은 이상하게 센스가 있었고 나와는 달랐다. 그런 작은 행동과 몸짓에도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그래도 웃긴 웃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빠가 더 많이 웃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다. 사실 이 기분은 정확하지 않다. 내 기억이 이상하게 왜곡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생긴 첫째의 스쳐 지나가는 이상한 왜곡. 그래서 나는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다. 바다 근처에 사는 우리 집은 아무리 창문에 엑스자로 청테이프를 붙여도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태풍이 정통으로 관통하던 날, 집의 전기가 나가고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상상력이 필요 이상으로 좋았던 나는 그 순간마저 집이 날아가고, 우리 가족들이 한 명씩 날아가는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더 공포로 몰아세웠다. 지금 생각하면 오버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광경이지만, 그 당시 겁을 먹은 우리는 촛불 하나에 서로를 의지하며 모여 있었다. 엄마는 기도를 하고 있었고 어린 동생은 울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아빠는 밤새 베란다에 서서 위태로운 창문을 잡고 있었다. 까딱하면 창문이 그대로 깨져서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창가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기만 해도 무서운 시커먼 태풍의 한가운데서,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창문을 잡고 버텼다. 아빠는 그렇게 태풍으로부터 우리 가족을 지켰다.
아빠가 서울에 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나를 보러 오셨다. 혼자 들른 딸의 자취방에 영 멋쩍어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옛날 오피스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허름한 자취방 모습을 둘러본 아빠는 방에 보일러는 들어오냐, 춥지는 않냐, 우풍은 심하지 않냐 등을 물어봤다. 싱글 사이즈보다 좁은 1인용 바닥 매트리스에 앉아서, 발만 매트 바깥으로 살짝 빼 둔 아빠의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발바닥에는 먼지가 조금 붙어있었다. 나는 다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얼마 안 돼서 가야 한다고 일어나더니 충무로 근처 샤브샤브 집에서 나에게 점심을 사주셨다. 아빠는 그날도 말씀을 많이 안 하셨다. 월남쌈에 야채를 야무지게 싸 먹는 나를 계속 쳐다보더니 그저 나더러 잘 살라고 하셨다. 나는 또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 년 만의 짧은 부녀 데이트는 끝났다.
하루는 회사에서의 일이 정말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제외한 유일한 회사원이고, 한 회사에서 이직도 퇴사도 하지 않은, 근속 20년 차 선배이기도 하다. 직장인 신분이기 이전에는 몰랐던 아빠의 근성에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또 한편으로는 성격이 아빠 같아야 회사에 오래 다니나 싶어 막막하기도 했다. 아빠는 소리 없이 조용히 굴러가는 쇠구슬 같은 사람이라면,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이리저리 튕겨 다니는 기타 줄 같았다. 그나마 찾은 아빠와 나의 공통점은 참을성이었다. 아빠에게 장문의 메시지로 고민을 적어 내려가거나 전화로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울분을 토로하고 나면 아빠는 그마저도 별말 없이 다 들어주었다. 내가 어느 정도 진정 되었을 때 아빠는 덤덤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절대적인 공감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한 말로만 효율적으로 골라서 전달해 주었다. 힘이 있고 유통기한이 긴 위로였다.
아빠는 부산 촌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데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아포가토마저 즐긴다. 한 번은 아빠가 아포가토의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조금씩 부으며 먹는 모습을 보며, 친구분께서 원래 커피를 모두 붓는 거라며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이거 다 부으면 질퍽해진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만의 철학까지 있다. 나는 쓰디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적응하는 데만 3년이 걸렸는 데 말이다. 게다가 영어도 나보다 잘한다. 외국인과 있을 때는 자연스러운 제스처와 말문이 잘 열리는 점이 신기할 정도다. 감정선에 변동이 없어서인지, 회사에서 오랜 해외 출장을 보내도 외로움이나 향수병 걱정 없이 묵묵히 다녀오는 사람이다. 말수는 적지만 필요할 땐 꽤나 웃긴 농담도 잘 던져서 우리 배꼽을 잡게 만든다. 가끔 보면 참 전략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연애 상대로선 꽝이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로서 백 점 만 점이다. 그래서 아빠에게도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최고의 아빠라고 해주었더니, 아빠는 ‘땡큐’라고 짧게 말했지만 개구지게 웃었다.
사실 이상형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깜빡했는 데, 저 위에서 나열한 것보다 가장 우선 시 되는 건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사람이다. 이 점도 아빠 덕분이다.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이다. 네이비색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