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위(化巖)

by 수현

꽃바위라는 예쁘장하면서도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동네에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분식집, 미용실 등등 모든 곳에는 꽃바위 또는 화암(化巖)이라는 이름이 공식처럼 붙었다. 20년 전엔 동네에 초등학교가 하나뿐이라 한 반에 학생이 약 40명까지 있었다. 그중 나는 키가 작고 성이 ‘김’ 씨라 항상 3번 정도 이거나, 남-여 순으로 순번을 배정받았을 땐 33번이나 37번 그 사이 어디였다.


3학년이 끝나던 해에, 신설 중이었던 초등학교가 완공되었고 이름 투표도 이루어졌다. 당시 최종 후보로 ‘미암 초등학교’라는 이름이 올랐는데, 나는 그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해서 한 표를 던졌다. ‘화암’보단 ‘미암’이 더 세련되고 덜 촌스러웠다. 그런데 미암의 ‘미’가 꼬리 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그 이름은 무효가 되고 다른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난 바뀐 그 이름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신설된 초등학교로 배정되었고 나를 포함한 절반의 친구들이 4학년 때부턴 함께 학교를 옮겨서 다니게 되었다. 싫었던 학교 이름과 달리, 새로 지어진 건물의 맛은 달콤했다. 넓은 운동장과 정문 앞 큰 문방구, 드라마에서만 보던 예쁜 교정이 갖춰진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같은 동네였지만 전학 간 느낌이 설렜고, 그곳의 첫 4학년 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우리 집이 나왔다. 집은 언덕 위에 있었고, 밑 동네에선 멀었다. 밑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내려가면 됐었지만 나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가파르고 힘들었다. 그땐 지금보다 몸이 절반 크기라서 집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점을 빌미로 캐리어 책가방을 조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매일 아침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바퀴를 덜덜거리며 언덕을 오르내렸다.

대부분의 놀거리나 잘 노는 친구들이 밑 동네 아파트 단지에 몰려 있었다. 그곳은 번쩍거리는 유흥거리와 유명한 체인점들이 몰려 있었고, 왠지 그쪽에 사는 친구들은 빨리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반면 우리 집 바로 앞엔 고등학교 하나, 조금 더 멀리 걸으면 오래된 교회 하나, 그리고 더 많이 걸어가면 무거운 크레인 하나가 떡하니 서 있고 그 주변에 아주 큰 배가 떠 있던 아빠의 회사가 있었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이외엔 거리에 사람이 잘 없었고, 밤에는 깜깜했다.


나는 당시 공부에 욕심 있는 애들이 간다는 옆 동네 모 여중이나, 기 센 애들이 주로 간다는 모 중학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동네의 중학교에 배정되었고, 역시나 꽃바위의 정체성이 가득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름보다 교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체크무늬 짧은 치마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교복을 입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정말 거리가 먼 디자인이었다. 대신 얇은 줄로 리본을 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서,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리본이라도 충실히 하고 다녔다. 적어도 주변에 나처럼 그 리본에 진심이었던 친구들은 거의 못 봤다. 치마 길이나 머리 규제에 큰 불만이 없었던 수더분한 성격 덕에 학생주임 선생님께는 나를 온 교실에 데리고 다니며 모범 복장으로 알리고 다녔다. 그러다 너 때문에 내가 더 혼난다는 눈빛으로 아래위로 흘겨보는 몇몇 무리의 아이들과 마주치는 날엔 괜히 쉬는 시간에도 복도로 나오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거실의 큰 창문이나 방의 창문을 열어 두는 걸 좋아했다. 이상하게 집 앞마당은 어두침침하고 바람이 심했고, 뒷마당은 볕이 짱짱하고 햇살이 항상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꼭 다른 세상 같았는데 어느 날은 이 괴리감이 낯설고 싫어서 앞마당을 바라보는 창문이 있는 곳은 애정을 주지 않았다. 대신 오목렌즈로 보듯 바다가 넓고 작게 보이는 뒷마당을 바라보는 베란다 창문에 서서 한참을 서 있곤 했다. 가끔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없어져서 마치 커다란 해일이 우리 집을 삼켜버리는 상상을 한 날이면 그날은 꼭 무서운 꿈을 꿨다.


고등학생이 되고선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차로 한 시간도 더 가야 하는 산자락의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부터 촌스러운 그 동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멀어졌고, 내 모습에서 이제 꽃바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언덕 위 그 집과 바다 근처 회사에서 머무는 부모님에게서는 꽃바위의 흔적이 짙고, 이제 막 스물두 살이 된 동생에게도 희미하게나마 아직 꽃바위가 남아있다.


그토록 멀어지고 벗어나고 싶었던 곳인데 하루가 벅찼던 날이면 이상하게도 촌스러운 그 이름들이 나를 두드린다. 그럼 나는 하나씩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꽃바위 종점, 화암초등학교,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를 똑같이 다닌 동생, 여전히 꽃바위에 사는 아빠 그리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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