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들고양이 집사
얼마 전부터 노랑이가 급격하게 쇠약해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우람했던 덩치는 쪼그라들어 여느 들고양이처럼 변했고, 노랗던 털들은 흰색을 띠고, 귀 근처 털들은 빠져서 숭숭 빈 데가 있다. 그래서 배를 뒤집으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애교를 부리면, 안쓰러워 말리고 있는데, 뒹굴고 있는 노랑이 등바닥으로 발을 들이밀고 일으켜 세우려고 하면, 두 발을 내 발에 대고 왼발 오른발 번갈아 마주치며 장난을 걸었다. 마치 두 발바닥으로 하이파이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녀석의 애교는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다. 이렇게 애교 많은 들고양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나비를 위해 노랑이를 내쫓기 위해 기꺼이 돌멩이를 들었었는데…….
농사를 지으며 맺게 되는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데, 들고양이들과의 인연도 그중 하나다. 우리 밭에 먼저 터를 잡은 고양이는 우리 부부가 ‘나비’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새끼고양이였다. 나비는 어미 고양이가 다른 새끼 한 마리와 함께 사라진 후에도 혼자 남아 우리 농막 밑에서 지내며 우리가 주는 사료에 의지해 잘살고 있었다. 내가 스티로폼 두 개를 이용해 만들어준 거처에서 잠을 자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나비의 영역을 넘보는 들고양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나비로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나는 나비의 영역을 넘보는 고양이들을 위협해 쫓아내기도 하고, 먹이통을 따로 준비해, 나비의 밥그릇을 지켜내 주고자 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거대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바로 노랑이였다.
노랑이는 들고양이 같지 않게 비대했다. 나는 이 노랑이만은 반드시 쫓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엇비슷해야 싸워도 볼 텐데, 이 노랑이는 일단 덩치가 너무 커서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했는지, 나비는 노랑이가 저 멀리 보이기만 해도 잽싸게 도망갔다. 나비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아, 나는 나비 대신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어 노랑이를 향해 던지며, 이 영역 안으로는 들어오지 말라고 시위했다.
그런데 이 노랑이 하는 꼴 좀 보소. 내가 돌멩이를 던지면, 비거리 바로 앞에서 멈추고, 항의라도 하듯이 야옹, 야옹, 야옹, 시끄럽게 울어 댔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돌멩이를 던져도, 지독한 스토커처럼 노랑이는 찾아왔고,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자기도 챙겨달라고 울어댔다. 사람들이 찾아와 농막 밑에 숨죽여 있는 노랑이를 보고, “어, 여기 고양이 있네.”라며 아는 척이라도 하면, 자기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야옹, 야옹, 시끄럽게 울었다. 나는 이런 노랑이가 불쌍하면서도 사료를 덜컥 내주지 않았다. 사료를 내주기 시작하면,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나비가 다시는 이 영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노랑이는 아무리 울어도 먹이를 주지 않으면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했는데, 나비는 그때를 노려 우리에게 돌아와 먹이를 먹고 갔다. 아마도 나비는 나무나 풀 뒤로 몸을 숨긴 채 이제나저제나 하며 노랑이가 가기를 기다렸다가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노랑이에게 얼마나 혼났던 것인지, 먹이를 먹으면서도 극도로 귀를 세우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먹는 것을 중단한 채 줄행랑을 쳤다. 나는 그런 나비가 안쓰러워 노랑이에게 더 야박하게 굴었다.
나에게 나비와 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딸이 “엄마, 노랑이도 먹이 좀 줘요. 둘 다 들고양이 신세는 같은데,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사료값 낼게요.” 했다. 사료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나비는 못 와.”
나는 노랑이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일을 그만두었지만, 먹이를 챙겨주지도 않았다. 먹다 남은 생선이나 고기가 있어도, 먹이 좀 달라고 시끄럽게 우는 노랑이에게 인심을 쓰지 않았다. 도둑고양이처럼 우리를 찾아오는 나비를 위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나비가 찾아왔을 때 꺼내주었다. 나의 완강한 태도를 읽은 것인지, 노랑이는 나 대신 남편을 쫓아다니며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남편은 저렇게 애처롭게 우는데, 사료 좀 주자고 했다. 덩치도 커서 목소리까지 큰 노랑이가 애처로움을 담아, 큰 소리로 우니, 나도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저 노랑이에게 먹이를 주면, 우리 나비 못 온다고.”
딸이 작년 추석 연휴에 밭으로 왔다가, 농막 밑에 있는 노랑이를 보았다.
“어, 네가 노랑이구나.”
딸이 노랑이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러자 노랑이가 시끄럽게 야옹거리며, 밖으로 나오더니 딸을 보고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엄마, 얘 좀 봐. 와, 완전 대박. 이렇게 애교많은 길고양이 처음 봐.”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노랑이 모습은 처음이었다. 딸은 애교부리는 노랑이가 너무 애처롭다며, 사료를 주었다. 오랫동안 굶었던 것인지, 먹성이 좋은 것인지, 위가 큰 것인지, 노랑이는 나비가 먹던 먹이통을 세 번 채워줘야 했다.
“엄마, 얘도 힘들었겠다. 이렇게 많이 먹어야 배가 차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알고 보면 얘도 참 가엾다. 아무래도 사람 손에서 컸던 고양이 같은데.”
먹이를 달라고 떼를 쓰듯 울어대는 것보다 먹이를 줄까 봐 배를 뒤집으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애교를 떠는 게 더 가여워 보였다. 그날부터 노랑이 먹이를 챙겨주게 되었다. 내가 염려했던 대로 노랑이 먹이를 챙겨주게 되자, 나비가 찾아오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올 2월 말경이었다. 얼굴에 피고름을 흘리며 노랑이가 찾아왔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얼굴 여기저기 이빨 자국이 나 있고, 심한 데는 곪아서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격을 당한 모양이다. 연고를 사다 발라주고, 항생제를 사료와 함께 섞어주었다. 그리고 면봉으로 고름을 눌러 주었는데, 아픈지, 야옹, 하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치료해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때를 기점으로 노랑이는 급격하게 쇠약해져 갔다. 덩치도 작아지기 시작했고, 사료도 예전처럼 많이 먹지 않았다. 작년 추석 때와 비교해 보면 노랑이 덩치가 반으로 줄었다. 딴 고양이처럼 변했다.
오늘따라 노랑이가 이상하다. 사료를 먹자마자 드러누워 몇 시간째 꼼짝을 안 한다. 평소 같으면 내 기척에 야옹, 하면서 아는 척을 하거나, 졸졸 쫓아다니며 시끄러울 정도로 야옹거리거나,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떨 텐데, 눈을 감고 누워있다. “노랑아, 어디 아프니?” 걱정스러워 물어보면, 겨우 눈을 뜨고, 작은 소리로 야오, 하고 만다. 정말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