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의 싸움
제 때에 심고 수확하는 일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특히 우리처럼 일주일에 2박 3일 동안 몰아서 일을 해치워야 하는 경우, 죽을 듯이 일을 하는데도 그렇다. 주말에 비라도 와서 일을 못하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가끔은 이마에 랜턴을 달고, 감자나 호랑이콩을 수확하기도 하고, 잡초를 매기도 하고, 쌈채소를 뜯기도 한다.
오리알태와 땅콩 심은 곳을 살폈더니, 군데군데 싹이 보이지 않는 데가 많았다. 왜 그럴까 싶어 고개를 숙여 살펴보았다. 나왔는데 떡잎만 사라진 데도 있었고, 아예 나왔던 흔적을 보이지 않는 데도 있었다. 여린 줄기만 있는 것은, 벌레 짓이 분명했다. 손으로 일일이 심은 것이다. 성격상 안 심고 넘어간 곳이 없음을 확신하기에, 싹이 안 난 이유를 알기 위해, 북주기 한 흙을 살짝 걷어내어 보기도 하고, 손으로 살살 흙을 파보기도 하였다. 북주기 한 흙이 너무 단단하게 뭉쳐 있어 그것을 뚫고 나오지 못한 것도 있었고, 싹의 방향이 구멍 뚫린 데가 아니라 비닐 멀칭한 곳으로 향해 떡잎이 자라지 못하고 썩은 것도 있었다. 아예 씨가 사라진 곳도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새가 파먹어서 그런 것일 테고.
집에 가기 전에 다시 심고 가지 않으면 심는 시기가 늦어져서 수확을 장담할 수 없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어두워졌다. 다음 주에 와서 심기에는 너무 늦다는 생각에 이마에 랜턴을 달고 심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걸 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거, 뭐 하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 등골이 뜨끔했다. 노인회장님 목소리였다. 서리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내 밭에서 내가 일했음에도 이렇게 무안할 수가 없다. 일에 미친 년이라 생각할까 봐서.
나는 목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려 꾸벅 인사를 했다.
“아, 노인회장님, 안녕하세요?”
“이 밤중에 뭐 하세요?”
노인회장님 부인이 또 물었다.
“아, 그게, 땅콩 싹 안 나온 데 다시 심어주고 있어요.”
“낮에 하시지.”
“낮에는 잡초를 매느라…….”
“그냥 제초제 쳐요. 잡초 못 이겨요.”
“그러게 말입니다. 고민이에요.”
“요즘은 제초제가 그리 독하지 않아요. 잡초를 손으로 매면서는 농사 못 지어요.”
“계속 그게 고민이에요.”
“아무튼 대단하세요.”
“그러게. 참 대단들하셔.”
노인회장이 부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칭찬하는 소리임에 틀림없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특히 오늘처럼 밤에 헤드랜턴을 쓰고 일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은데, 길가 밭이다 보니, 꼭 누군가 보고 놀라서 말을 건다.
솔직히 우리 농사 규모가 밤에 이마에 랜턴을 달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잡초 때문이다. 정말, ‘망할 놈의 잡초’라고 하고 싶지만, 지구가 푸른 것은 잡초 때문이기도 하니, 잡초를 향한 욕을 애써 참는다. 잡초가 자라지 않는 땅은 곡식도 자라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곡식이 잡초에서 온 것이리라. 우리가 먹는 것은 곡식이 되고, 먹지 않는 것은 ‘잡초’라 불리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잡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불리는 것들 중에는, 언젠가 몸에 좋은 곡식으로 탈바꿈할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잡초’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용을 써도 잡초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잡초의 생명력은 정말, 진짜, 존경스러울 만치 놀랍다.
올해만 해도 벌써 잡초를 서너 번은 매었다. 그런데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잡초가 나오고, 요즘처럼 날씨가 받쳐주는 날에는 정말 기절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다. 우리 2번 밭 옆 밭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작년 들깨 수확 후에 농사를 포기했는지, 밭을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일 년도 안 되어 그 밭은 숲처럼 변했다. 그만큼 잡초의 힘은 대단한 거다. 그 대단한 힘과 두 손으로만 싸우려니,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 부부는 농사 1년 차에는 멀칭도 꺼렸던 사람들인지라, 농사 4년 차인 올해까지는 제초제를 꺼리고 있다.
내가 잡초를 뽑고 있으면 체리 할아버지가 들어오면서 말한다.
“아이구, 못 말려. 그렇게 제초제를 뿌리라고 해도 말을 안 듣네.”
“고민이에요. 제초제를 뿌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지 말고, 그냥 뿌려. 요즘은 용량대로만 뿌리면 괜찮아. 괜히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하기는 처음에는 멀칭도 안 한다고 했으니, 어때 멀칭하는 것은 힘들어도 멀칭 하니 편하지?”
“네. 그렇더라구요.”
“제초제도 마찬가지야. 제초제를 치면 일이 훨씬 줄어드는데, 뭔 고집을 그리 피워. 쯧쯧쯧.”
체리 할아버지는 잡초를 매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체리 할아버지는 1년 차부터 우리에게 멀칭해라, 제초제 뿌려라, 하고 조언을 해온 터였다. 잡초를 매고 있으면, “아이고, 힘이 남아도네, 돌아. 그 힘은 나중에 써.” 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덧붙였다.
“잡초를 이길 생각은 아예 하지 마. 이길 수가 없어. 잡초 이기려다 자네들이 먼저 죽어. 죽는다구.”
누가 보아도 잡초와의 싸움은 어리석은 싸움일 수가 있다.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 일이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어쩌면 고집일 수도 있다. 아마 내년에는 제초제를 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농사를 몸에 맞추는 게 아니고, 농사에 몸을 맞추려고 하다가, 우리가 먼저 죽겠다.
잡초와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