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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ul 06. 2022

4년 차 농사일지 5화

비가 안 와서 걱정, 비가 와서 걱정

  감자를 지금 캐야 할지, 일주일 후에 캐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며칠간 계속 비가 내리고 흐려 감자가 크기에는 악조건이었다. 감자가 싹을 틔우고 순을 키우고 알맹이를 키울 때는 봄 가뭄이 심했다.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었지만, 비닐로 멀칭을 하고 감자를 심은 터라 물이 감자 뿌리까지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상 수확할 때가 다가오자 연일 비가 내렸다. 뭐든 적당해야 한다. 비가 안 와서 걱정했더니, 이제는 비가 너무 와서 걱정이었다. 가뭄도 문제지만, 비가 너무 내리면 감자는 썩는다. 

   다음 주도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가 예보되어 있다. 아무래도 캐야 할 것 같았다. 일주일 더 둔다고 감자알이 더 굵어진다는 보장도 없었고, 시기를 놓쳐 썩으면 안 되니까. 


  감자 줄기를 잡아당겼더니, 줄기만 맥없이 툭 끊어지듯이 올라오고, 알맹이는 딸려 나오지 않았다. 감자는 줄기를 잡아당기면 한두 알 빼고는 다 딸려 나온다. 그런데 며칠간 내린 비로 감자를 품고 있던 흙이 질퍽거려서 감자알이 줄기를 따라 올라올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호미로 줄기가 있던 자리 아랫부분을 고대 유물이라도 캐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팠더니, 감자알이 보였다. 행여 호미로 감자에 상처를 낼까 정신을 집중해서, 손으로 흙 속을 더듬으며 감자를 꺼냈다. 감자알이 굵지가 않았다. 

  계속 작업을 해나갔다. 줄기에 감자알이 딸려 나오지 않으니 작업은 더뎠다. 게다가 감자알은 예상대로 굵지가 않았다. 상품성이 떨어졌다. 작업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가 다 먹는다면야 상관없지만, 주문도 받았고, 도움을 받은 게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물로 주겠다고 미리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품성 있는 게 10kg들이 상자로 열 상자는 되어야 하는데…….     


감자 심을 이랑을 고르고 있는 남편


 작년에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감자를 캤는데, 올해는 감자 캐는 내내 짜증이 올라왔다. 장화가 푹푹 빠질 정도로 물을 먹은 흙을 헤치며 감자를 캐어내는 게 힘이 든 데다, 날씨는 푹푹 찌고, 소출이 적어서 영 기운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호미로 잡초 제거 작업을 하는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감자 괜히 심었어!”

  “왜? 감자가 별로야.”

  “응, 씨값도 못 건지겠어.”

  “그래?”

  “많이 심지 않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


장화 신은 발이 빠질 정도로 물 먹은 감자 이랑


 하지감자는 금방 소비를 하지 않으면, 더운 날씨에 쉽게 상한다. 고구마 캐는 것보다는 감자 캐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감자는 저장성이 약하다. 저온 창고가 없는 우리로서는 소비하거나 판매할 수 있을 정도만 심어야 했다. 그래서 감자를 많이 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수확량이 적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상품이 50kg도 안 되었다. 상품으로 두 상자를 채웠다. 한 상자는 판매용, 한 상자는 선물용, 그리고 다시 알이 굵은 것들로 두 상자 정도를 골라냈다. 

 한 상자는 팔고, 한 상자는 선물용으로 드리고, 두 상자는 주문한 사람들과 선물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무료로 나눠주기로 정했다. 고르다 남은 올망졸망 작은 것들이 우리 차지다. 

 “감자를 채썰기해서 볶으려면 감자알이 굵은 것이 좋은데……. 휴우.”

 나는 감자요리 중에서 감자볶음을 제일 좋아한다. 올망졸망한 감자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좋은 농산물을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인데 막상 우리는 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먹게 된다. 이참에 감자를 농사목록에서 지울까 싶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를 기점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들은 농사목록에서 지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식구는 하지감자 10kg 한 상자면 충분하다. 최상품으로 산다고 해도, 씨감자, 토양살충제, 밑거름용 퇴비, 비료, 멀칭용 비닐 가격을 합한 것보다는 싸게 먹힐 것이다.      

  “여보, 우리 내년에는 감자 심지 말고 사 먹을까요?”

  “왜?”

  “우리가 먹어봐야 10kg 한 상자면 되는데.”

  “글쎄다. 그렇게 비용으로 따지면 지을 게 하나도 없겠다. 그냥 우리 먹을 거 심는다 하고 심어.”

  “그래도 올해 같으면 사서 먹는 게 훨씬 나아요.”

  “우리가 언제 그것 따지면서 농사 지었냐? 그냥 하던 대로 해.”

  저렇게 나오니, 아마 감자는 내년에도 심어야 할 모양이다. 


수확한 후 선별작업을 위해 널어놓은 감자


  감자는 농사 첫해부터 심었는데, 이렇게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씨감자 값은 건졌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못했다.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는 농부만 짓는 게 아니라 하늘이 같이 짓는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때에 따라 비가 적절하게 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는 안 와도 걱정, 너무 와도 걱정이다. 우리가 감자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가였다면 울 뻔했다. 생계가 달린 문제니까. 봄 가뭄 때문에 감자 수확량이 줄었다는 기사는 봤는데, 감자가격이 확 올랐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감자가 주 수입원인 농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농사를 지었을까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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