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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un 21. 2022

4년 차 농사일지 3화

문제는 판로다

 우리는 아직 감자를 수확하지 않았지만, 시중에는 벌써 햇감자가 나왔다. 생각보다 감자가 싸게 나와 있다. 사 먹는 소비자 입장이라면 감자가격이 싼 거에 환호하겠지만, 생산하고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가격이다. 심지어 너무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나온 농산물을 보면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출하했던 공판장 싸이트에 접속해 감자 낙찰가를 확인해 보았다. 수미감자 10kg 한 상자 낙찰가가 만 원 조금 넘었다. 알감자는 3천 원이었다. 포장 상자 가격만도 천 원일 텐데……. 거기에다 수수료를 빼면 농부 통장에 찍히는 돈은 얼마일까. 안타깝다. 감자를 조금만 심기를 잘했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배추, 무, 양파 등등의 채소밭을 갈아엎는 뉴스를 접할 때, 갈아엎느니 차라리 싸게 팔지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말 하지 않는다. 싸게 파는 게 더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확하고 포장하고 운반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계산하면 트랙터로 갈아엎는 게 더 싸게 먹히니까 그러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식 같은 농산물을 갈아엎을까.      

  

  농사 1년 차에는 대체 뭔 작물을 심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추를 비롯한 쌈채소류에다 고추 50주, 그리고 우리가 먹을 양에 조금 보탠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남은 400평 정도에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고구마순을 40kg 심었는데, 고구마 판 가격이 81만 원이었다. 고구마순 값을 제하니 손에 쥔 것은 겨우 60만 원 정도였다. 

  원래는 고구마를 공판장을 통해 판매하려고 했다. 그래서 출하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농협경제사업장을 방문해 직원에게 상담하고 있는데, 그곳에 있던 현지 농민들이 우리에게 고구마를 얼마나 심었는지 물었다. 우리가 농사짓는 규모를 말했더니, 10kg 한 상자에 얼마를 기대하냐고 했다. 나는 평소 마트에서 사 먹던 가격을 떠올리며 거기에서 유통비라고 생각되는 액수를 빼고 답했다. 그러자 현지 농부가 혀를 끌끌 차면서, 양이 적을 때는 낙찰가를 더 후려친다면서, 상자값 빼고, 운송비 빼고, 수수료 빼면 10kg 한 상자에 5천 원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듣기에는,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을 빼는, 엄포에 가까운 말이었다. 공판장에 보내는 거 말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상처받을 거라며, 귀농해서 3년을 넘기지 못하는 데에는 그런 사정도 한몫 보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양이 많지 않으니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라고 조언했다.  


  고구마 캘 것도 걱정이라 밭으로 와서 캐고 가면 10kg에 만 원에 가져가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싸게 가져가는 대신 큰 거 작은 거, 캐다가 부러진 것 몽땅 가져가라고 했다. 호응이 좋아 3일 만에 다 나갔다. 문제는 내 마음과 달리 골라서 가져갔다. 그리고 가져온 상자 크기들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상자에는 12kg, 13kg, 심지어 14kg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12,000원, 13,000원, 14,000원 받을 수가 없었다. 완판이었지만, 내 마음은 완파되었다. 해서 2년 차에는 고구마 농사를 줄였는데, 그 해는 여름 장마가 아주 심했다. 판매는 고사하고 우리가 먹을 것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할 정도였다. 속상했다. 만약 고구마 농사를 줄이지 않았다면, 더 속상했을 것이다. 올해는 작년보다도 더 줄였는데, 내년에는 더 줄일 것이다. 품삯도 건지지 못하는 게 고구마 농사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도 판로가 막히면 말짱 꽝인 것처럼, 농산물 생산도 결국에는 판로가 좌우한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공판장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보낸다. 뭐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낙찰가를 후려친다고 욕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공판장 판매보다 지인을 통한 판매액이 더 많았다. 판로 개척에 애먹는 농민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아직은 판매액이 크지 않지만, 믿고 있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로컬푸드 매장을 통한 판매이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누군가 우리가 출하한 농산물을 구입하면, 당일 밤 10시 18분에 Web 발신으로 팔린 품목과 판매액에 관한 문자가 온다. 오늘은 뭐가 얼마나 팔렸을까 하면서,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출하한 품목이 있는데, 안 팔리는 날이면 괜히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단돈 천 원이라도 매출이 있는 날이면, 야호, 아싸, 하면서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기도 한다. 뭐랄까. 판매된 날에는 우리의 노고를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오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받은 졸업장, 수료증, 자격증 중에서 요즘 가장 쓸모있는 게 ‘로컬푸드 신규 참여농가 교육 수료증’이다. 정말 우리에게는 요긴한 수료증이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몸 고생에 더해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로컬푸드 참여 농가 교육을 받다


 

  내가 로컬푸드 매장에 눈독(?)을 들인 것은 1년 차 경험 때문이다.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 많고, 그렇다고 공판장으로 보내기에는 적은 애매한 농사 규모라 판로에 애를 먹었다. 더구나 감자, 옥수수, 고구마를 제외한 채소와 과일을 무료로 나누어주었는데, 나눠주는 기쁨을 갉아먹는 일들이 있었다. 애써 지은 농사라 그냥 썩히는 꼴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해서 무리하게 나누어 주었다. 받는 사람들도 적당량을 받아야 좋은데, 식구들이 많지 않고, 외식들을 자주 하는 문화라 양이 많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될 공산이 크다. 받는 사람도 부담이고, 주는 사람도 부담인 일은 줄이는 게 좋다. 판로만 있다면 말이다. 판로, 판로, 판로가 문제다. 그렇다고 길거리에 나앉아 팔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로컬푸드 매장이었다.      

  

  로컬푸드 매장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로컬푸드 신규 참여농가 교육을 받게 되었다. 로컬푸드에 첫 번째로 출하한 품목은 풋땅콩이었는데, 1kg씩 담아 5개를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그날 당일에 5개가 다 판매된 것이다. 밤 10시 18분에 로컬푸드 매장에서 보낸 Web 발신 문자를 받고, 잠이 안 올 지경으로 흥분이 되었다. 그날은 2021년 9월 11일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기념일 같은 날이 되었다.      


2021. 9. 17 로컬푸드 매장에 진열된 풋땅콩 

  


  우리 같은 소규모 농가한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매장이 로컬푸드 매장이다. 항상 판로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농업경영체에 등록을 했는데도 농업경영인 같은 느낌이 없었는데, 로컬푸드에 출하하는 날, 비로소 진정한 농업경영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팍 왔다. 2021년 9월 11일. 작지만 강한 농업으로 가는 첫걸음을 뗀 날이다. 감사하고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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