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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un 08. 2022

4년 차 농사일지 1화

  농사지어 돈 벌 생각 하지 말란다

  농협경제사업장에 가서 멀칭용 비닐과 모두싹 3병, 비료 9포를 샀더니, 결제할 금액을 32만 원  넘게 불렀다. “엥, 왜 이렇게 비싸요?” 했더니,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담당 직원이 “비료값이 올라서 그래요.”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비료값 보조 되는 거 아니에요?” 

  보조했는데도 그렇단다. 작년보다 비료값이 2배나 올랐다고 덧붙였다. 

  “이러니, 농사지어서 돈 벌 수가 없네.” 하며 투덜대었더니, “농사지어서 돈 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고 응수했다. 그럼 봉사활동이나 취미로 농사지을까? 괜히 화가 났다. 누구나 하는 말인데도 말이다. 절대로 농사지어서 돈 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찐농부를 붙들고 물어보아도 그렇고, 귀농해서 조그맣게 농사짓는 사람들도 그렇고, 평생 농부로 살아온 친정어머니도 그렇고, 고향 친구들도 그렇고, 지인들도 그렇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절대로, 절대로, 농사지어서 돈 벌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비닐 멀칭한 모습



  각오하고 시작한 일인데도 맥이 풀렸다. 아직 덥지도 않은데도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기분이 꿀꿀할 때는 단 게 최고다. 농협경제사업장을 나와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남편에게 하나 주고 내 입에 하나를 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벌써 4년 차 농사를 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3년을 넘기는 게 고비라 하였는데, 3년을 무사히 넘기고 4년 차 접어들었다. 3년 차 농사일지를 열심히 쓰다가 너무 바빠지면서 기록하고 되새기는 일을 그만두었다. 4년 차 농사를 지으며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볼 필요를 느낀다.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소홀히 했는지, 차고 넘치는 일들, 부족하고 모자랐던 일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올해 농사일에 참고해야겠다. 

  

  작년 한 해를 생각하면 몸은 엄청 고생스러웠지만, 농부 비슷하게 변신한 것도 같다. 내가 자신있게 농부요, 하고 나설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붓글씨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강사분이 서력 10년이 되기 전에는 어디 가서 붓글씨 배웠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농사도 그런 것 같다. 10년을 농사짓기 전에는 농부라는 호칭을 감히 쓸 수 없을 것 같다. 농사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종합예술 같은 느낌이 든다. 

  친구에게는 농부로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내 말이 허장성세라는 것을, 친구도 알고 있다.  

  

  작년 매출이 1000만 원이 넘었다. 1년 차, 2년 차 농사 매출과 비교했을 때 7배가 넘는, 그야말로 꿈의 액수를 기록한 것이다. 이게 순수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매출과 매입을 따지면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지출된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45마력 중고 트렉터를 550만 원, 대형 고추 건조기 2대를 250만 원 주고 구입했다. 이 둘만 합해도 800만 원이다. 그 외 퇴비와 비료, 농약, 모종 및 각종 농자재 값을 더하니 지출이 1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게 농사인가 보다. 농협경제사업장 직원이 농사지어서 돈 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는 말의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들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렉터 운전 연습하는 남편


  중고 트렉터를 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제 후회한들 소용이 없고, 올해는 매출이 매입을 초과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신바람이 나지. 아무리 산천이 수려하고, 하늘은 푸르고, 바람이 향기로워도, 고생하는 보람이 얼마라도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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