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담 Jun 30. 2022

4년 차 농사일지 4화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일어나, 얼른!” 

  잠결에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기에 통화버튼을 눌렀더니, 체리 할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 이렇게 일찍…….”

  “일찍은 무신 일찍. 얼른 나와.”

  문을 열고 밖을 보니, 체리 할아버지 트럭이 농막 앞에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남편이 런닝셔츠 바람으로 튀어 나가 동물방지용으로 쳐놓은 그물망을 걷었다. 

   “하여간 부지런하시기는.”

   “서둘러야지. 해 뜨고 더우면 하기 힘들어.”


  처음에 비닐하우스를 지어달라고 주문할 때 6M×10M로 정했다. 남편이 그 정도 크기면 비닐하우스 안에서 상추나 수박, 참외도 길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반은 그늘막을 덮어주고, 반은 투명비닐만 씌워달라고 요구했다. 

  여름이 가까워지자 한 겹 그늘막으로 햇볕을 차단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늘막 덮은 부분에 비닐하우스용 보온재를 덮고 그늘막을 한 겹 더 씌우는 공사를 주문했다. 30만 원을 달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지은 지가 한 달 조금 지난 때라 싸게 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재료비 문제가 아니라 인건비가 문제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30만 원을 주고 맡겼다. 


  그때라도 지붕 전부를 다시 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안에 상추랑 수박이랑 참외를 심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쪽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호미 두 자루, 괭이 한 자루, 삽 한 자루로 시작한 농사일이라, 처음에 비닐하우스가 꽤 넓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에 가재도구가 늘어나듯이 농자재도 점점 늘어났다. 1년이 지나자, 수박 참외는커녕 상추 키워 먹을 공간도 사라졌다. 

  그늘이 없는 비닐하우스로 인해 농자재의 수명이 단축되고, 그늘에서 보관해야 하는 농산물들을 놔둘 공간이 없었다. 플라스틱 농자재는 색이 변색 되고, 쉽게 부서졌다. 그늘에 널어 말려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그럴 여유 공간이 없었다. 


  4년 차 맞는 여름이 다가오니, 걱정이 슬슬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투명비닐만 씌운 반쪽을 보온재와 그늘막으로 마저 덮어야 할 것 같았다. 농자재의 수명도 문제지만, 내 수명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지난여름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고추를 씻다가 더위를 먹어 죽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반도 보온재와 그늘막을 덧씌우기로 결정했다. 남들은 그 정도 일은 스스로들 하던데, 남편은 그런 데는 재주가 없다. 부지런함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데도 말이다. 건자재 가게에다 부탁하면 재료와 일꾼을 보내주겠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체리 할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까요?”

  “그러면 좋은데, 미안해서.”

  미안해서 선뜻 말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내가 또 나섰다. 체리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니, “응, 알았어. 걱정마. 도와줄게.” 하고 흔쾌히 답했다.      

  

  가까운 농막에 있는 아주버니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금방 달려왔다. 아주버니와 남편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고, 체리 할아버지는 혼자서도 잘했다. 조리개를 끼우는데, 체리 할아버지는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끼우는 것 같은데, 남편 입에서는 연신 에히, 에히, 힘에 부쳐 내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요령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니 그러는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줄 분야가 아니라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는데, 멀리서 보면 체리 할아버지는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일하는 것 같고, 형제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어 보였다. 





  

  11시 가까이에 일이 마무리 되었다. 나는 서둘러 점심상을 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달라 맡겼으면 돈도 안 들고, 고생도 안 하고 좋았을 텐데, 그때는 잘 몰라서…….”

  “다 그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어. 나도 그래. 관수 시설을 하는데, 세 번이나 바꿨어. 이거 해서 안 좋으면 다시, 다시 한 게 아니다 싶으면 또다시,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르신이야 혼자서도 잘하시니 문제없지만, 우리는 잘못하면 다 남의 손을 빌려야 되어서, 좀 속상해요. 처음부터 잘 생각해서 할 걸 하고.” 

  “할 수 없지, 뭐. 그러게 왜 농사짓겠다고 나서서 이 난리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맙기는, 도우며 사는 거지.”

  “오늘 일은 나중에 체리 열리면 체리 따는 걸로 갚을 게요.”

  “허허. 그래.”          

이전 03화 4년 차 농사일지 3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