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녹이는 고추 농사
금요일 오후, 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초등학교 동창생 이름이 떴다. 평소 안부 주고받는 전화를 하지 않는 사이라서, 혹여 초등학교 은사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무슨 일 있니?”
다짜고짜 전화 용건을 물었다.
“너, 고향에 안 내려온 지 한참 되었지?”
“그러네.”
“이제는 좀 여유있게 살 때도 되지 않았니?”
“그러게 말이다. 나이 들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바쁘네.”
“왜 바쁜데?”
“농사일 하느라.”
“농사? 너 농사, 농사, 하는데 대체 얼마나 짓는다고 그러냐?”
“한 1300평.”
“아이구, 맙소사, 그럼 진짜네. 나는 너가 농사짓느라 바쁘다 해도 텃밭 정도 하는 줄 알았는데. 이거 진짜구나. 야, 너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 어릴 적 생각 안 나냐? 나는 농사가 지겨워 어떡하면 농사를 안 짓고 사냐, 그 궁리만 했는데.”
“글쎄다. 나는 지겨울 정도로 농사일을 거든 적이 없어서.”
“하기는, 너는 농번기 때 결석 한 번 안 했으니. 농사일이 무섭지 않아 덤볐구나.”
농사일이 무섭지 않아 덤볐다는 동창생 말에 웃음이 나왔다. 농사일을 무슨 커다란 동물을 상대하는 것처럼 비유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수입은 있는 거야?”
“아직은.”
“야, 1300평 농사짓는데, 수입이 없다니, 뭐가 이상한 거 아니냐?”
“트렉터도 사고 고추 건조기도 사서.”
“아이고, 트렉터는 왜 샀어? 그 비싼 걸.”
“중고 트렉터야.”
“그래도 그렇지. 완전 농사꾼 되려고 작정했구나. 아이고, 그 힘든 일을, 너는 어째 거꾸로 사냐?”
친정집 농사 규모가 적었던 것은 아니나,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농번기라도 결석 한번 한 적이 없다. 농번기가 되면 농사를 돕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방학에만 밭일을 거들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해서 그랬는지, 이담에 절대 농사일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살겠다는 식의 결심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오늘의 사태를 몰고 왔는지도 모른다.
작년(2021년)에 고추 모종을 1350주나 심었다고 했을 때, “야, 그 고추 대체 누가 다 딸 거냐?” 하는 걱정을 담은 멘트가 초등학교 동창생 단체 카톡에 올라온 적도 있다.
타국에 사는 남동생은 처가가 예전에 고추 농사를 지었다면서, 아내는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고추 농사짓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견딘다고 했다. 힘들다는 아내 말에 장모님이 “예전 고추 농사짓던 때 생각나니? 그때보다 더 힘드니?”하고 물었다고 했다. 아내가 “아니요.” 하니, “그럼 고추 농사짓던 때 생각하면서 견뎌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밭을 방문했던 남편 지인은, 고추 농사는 몸을 녹이는 농사라면서 제발 잘 지은 고추를 사서 먹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말들을 들었던 터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고추가 익을수록 고추 딸 걱정이 앞섰다. 따고, 씻고, 건조기에 넣고, 건조기를 열고 잘 건조된 것을 골라내고, 덜 건조된 고추는 다시 시간 설정해 다시 건조 시키고,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로 일을 해야 했다. 삼복더위도 더위인데, 고추밭에 기생하는 모기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초록색 모기장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입었는데도 모기의 극성을 완전하게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안 입은 것보다는 나아 더워도 꼭 모기장 옷을 껴입고 작업을 했다.
하루는 옆 농장 체리 할아버지가 와서, “아이고, 고생이 많네. 다 건조 시킬 생각하지 말고, 더러는 홍고추로 그냥 공판장에 보내. 뭘 다 붙들고 있어. 그러다 이 더위에 죽어. 죽는다고.” 했다.
체리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농협경제사업장으로 달려가 공판장에 출하하는 양식에 이름을 적고, 홍고추 포장용 종이상자를 사서 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더러는 홍고추 상태로 공판장으로 내보냈다. 그랬더니 확실히 일이 줄어들었다.
체리 할아버지도 경매낙찰가가 궁금했는지 다음 날 아침에 와서 경매낙찰가를 물었다. 그리고 거봐라, 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어때? 괜찮지? 미련하게 하지 말고, 옆 농부들은 어떻게 하나, 잘 살피라고.” 했다.
내 일이 바빠, 옆 농가들은 어떻게 하나 살필 새가 없었는데 체리 할아버지가 대신 정보를 제공해주어 그 덕을 보았다.
올해는 고추 850주를 심었다. 작년에 고추 작황을 비교해 본다고 두 개 밭에 나눠 심었더니, 1번 밭 작황이 더 좋았고, 일의 효율성이나 능률성에서 한 곳에 심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추 농사가 힘들어 우리 먹을 것만 심을까, 고민도 해봤는데, 대형 고추건조기 두 대랑 수백 개의 고추지지대 산 게 아까워 양을 줄이고 심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고추 농사는 말 그대로 몸을 녹이는 농사였다. 30도가 넘는 폭염에 모기장 옷을 껴입고 모기에 뜯기며 고추를 땄더니, 뭐랄까, 세상 두려울 게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이 직장에 간 사이에 혼자 고추를 따기도 했는데,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혼자 일해서 무섭지 않냐?”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야, 30도가 넘는 더위에 모기한테 물리며 고추 땄더니, 세상 무서울 게 없다. 하하하.”
정말 그랬다. 나도 앞으로 살면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한여름 폭염과 모기에 시달리며 고추를 땄던 날들을 생각하며 버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