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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Jul 09. 2024

남편은 침대가 버리고 싶었다

결혼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침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눈에 예뻐 보이는 페브릭 침대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조언을 구하고 다녔다. 살림을 나보다 먼저 살아온 시누와 동서는 두 입을 하나로 모아 이야기했다.


"절대 페브릭은 사지 마"


페브릭은 오염이 됐을 때 세탁하기 힘들뿐더러 앞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을 결심하지 않은 이상 관리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고민은 끝이 없었지만 옹골찬 심지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주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평생 한 번 사는 신혼살림인데 원하는 것을 고르기로 한 것이다.


디자인이 이뻤으면 했다. 1인용 침대만 사용하던 내가 남편과 살을 부디끼며 잠을 자야 하는 곳이라면 아늑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고 멋스러운 공간이길 바랐다. 홈페이지에서 신혼 가구를 본 순간 '이거다' 싶었던 이유는 능선을 그리듯이 떨어지는 조명의 노란빛과 넓게 뻗어 있는 침대의 웅장함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신혼집에 들어온 침대와 조명은 깔끔함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신혼 생활을 보냈다. 디자인 때문에 실용성은 떨어졌지만 보기에 이쁘다는 이유로 불편한 줄 모르고 썼다. 한쪽에 가드가 올라와서 한쪽으로 만 내려가야 하는 것도, 침대 옆에 방석이 크게 있어서 걸어서 내려가야 하는 모든 불평들이 '그래도 예쁘잖아'에 퉁쳐졌다.


그리고 3년 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생기면서 퀸 사이즈 침대가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내 옆 있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솜털이 날리는 아이가 되었다. 몇 년 뒤 아이가 하나 더 생기고 퀸 사이즈에서 아이 둘을 케어하기 힘든 순간이 왔다.


결국 방을 버리고 우리 식구는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5년을 만족스럽게 사용했던 침대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침대를 보아하니 침대뿐만 아니라 방까지 버려지는 것 같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침대를 옮기자.


좀 더 작은방으로 침대를 옮기기 위해 침대를 분해했다. 침대 프레임이 매트리스보다 컸기 때문에 분해를 해도 들어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바닥 부분이 3개로 쪼개어져 있는데 가장 큰 부분은 어지간한 힘으로 해도 들기 쉽지 않았다. 꾸역꾸역 남편이 이끄는 대로 옮기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남편이 많이 힘들었을게 눈에 보였다.


남편은 침대를 버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버릴 수 없었다. 아직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렇지 곧 저 침대를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잠시 보류하는 마음으로 방 한쪽에 옮겼다. 방 안에 들어간 프레임은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었다. 아이들이 위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탈 바꿈 한 것이다. 프레임을 버릴 수 없어서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프레임 위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아이들은 재밌게 노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노는 일도 2년이 지나면서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를 올리고 침대로 쓰면서 손님들이 자기도 하고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누워 푹신한 매트리스를 누리는 기쁨을 남몰래 즐기기도 했다.


이고 지고 살던 침대 프레임을 버리기로 결심한 건 10년을 참은 시간에 비하면 순식간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신혼 때 자리를 잡고 있었던 살림들이 하나 둘 고장이 나거나 정리해고 당하듯 사라지고 있는 때 골칫덩이 침대 프레임이 해고 1순위로 올라온 것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서 부피를 차지하는 침대를 더 이상 안고 지낼 수 없었다. 바닥 생활을 원하는 남편과 앞으로 침대를 쓸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트리스는 건진다 하더라도 프레임이 지나치게 커서 불편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키가 크는 것이 아니라 짐도 늘어나는데 포화상태의 집에 새로운 것을 들이기 위해서는 묵은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5년 만에 침대를 또 해체했다. 버리기 위해 마지막 작업이었다.



침대가 낮은 편이었는데도 바닥 아래 많은 먼지와 잡동사니들이 나왔다. 눈에는 깨끗해 보이지만 숨어 있는 먼지들로 인해 발바닥에 검은 잉크를 찍은 것처럼 시커먼 발이 되었다. 남편이 가구를 살 때 청소가 가능할 만큼 바닥과 가구가 떨어져 있길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청소가 힘든 가구는 관리하기가 어렵다.


걸레질을 하면서 지우개 똥 같은 먼지 때들이 밀려나갔다. 얼마나 오래 먼지가 눌어붙었으면 쓸리지도 않고 밀려 나갔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침대 프레임을 산다면 꼭 청소가 가능한 높이의 다리를 지닌 제품을 사리라.


페브릭 침대는 분리하면서 표면을 감싼 천을 떼야한다. 두 번째 먼지 폭탄이 여기서 터졌다. 침대 프레임 벨크로에서 천을 떼어 낼 때마다 폭죽 터지듯 먼지들이 바깥으로 뿜어지듯 퍼져나갔다. 이런 먼지 속에서 살았다니. 시누가 원목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쓱 닦아서 쓸 수 있는 것이 최고라더니 페브릭을 벗겨서 자주 세탁할 의지가 없다면 결코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른들의 경험을 새겨 들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치이고 데이며 배워 온 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집을 부리며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보고 경험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시누와 동서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페브릭 제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페브릭 만의 감성이 있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인지 구분을 하고 제품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살림을 느슨하게 하는 경우 혹은 살림에 흥미가 없는 나 같은 경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해야만 다.


결혼 10년이 되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둘이 살던 집에 두 명의 아이가 생겼고 살림에 부하를 느낀 제품들이 하나 둘 정리되어 가고 있다. 더러는 쓰임에 맞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가는 것들도 있다.


신혼의 단꿈에 깬 것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침대를 볼 때마다 문득문득 그때가 떠올랐었다. 신혼살림을 알아보던 일,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 후 누렸던 침대의 푹신함, 큰 아이와 뒹굴며 육아하던 시절 등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회기동 파전처럼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분리되어 쓰임을 잃어버린 침대는 추억에서 폐기물이 되었다. 비싼 값을 주고 샀던 제품이었는데 버릴 때도 만만치 않은 비용과 수고가 들었다. 편의점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사면 되지만 빼기 앱을 이용해 손쉽게 폐기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빼기 앱에서는 폐기물에 대한 수거를 요청할 수도 있어서 혼자서 하기 힘들 때 이용하기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경비실 앞에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아둔 침대 프레임에 빼기 앱에서 발부된 예약번호를 붙였다.


빼기 앱을 이용하면 버리는 것 외 기부 및 중고 물품 구매도 가능하다.


아직도 아파트 창문에서 경비실을 바라보면 수거되지 않은 침대 프레임이 보인다. 필요에 의해 예쁘다는 기준으로 샀지만 짐이 되어 버려지는 순간을 볼 때마다 심사숙고해서 '잘'사야 함을 느낀다. 나에게 맞는 제품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로 다시 집을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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