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재 Apr 18. 2021

Ep.12 중국 도심 속 숨은 명소, 杜甫草堂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긴 휴일이 찾아왔다. 일주일에 고작 3번 나가는 수업이었는데 이번 주는 6일을 쉬었다. 노동절(劳动节)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불리던가?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이름은 다르지만 사실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각국의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인 메이데이(May-day)라는 점에선 중국에서 노동절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강과 노동절의 연유가 겹쳐 6일이라는 긴 시간이 내게 주어졌기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웨이신(微信)을 켰다. 그리고 친구 목록을 뒤적거렸다. 청두(成都)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가볍게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80명이 넘었다. 하나하나 얼굴이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들 보고 싶은 얼굴들 뿐이었다. 그러던 중 저번 칭청산(青城山)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3명이 떠올랐다. 그때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다음에 만나면 분위기 좋은 곳으로 소풍 가자!"


나는 이번 휴일을 맞이해 그들과 함께 소풍을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나 혼자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은 흔쾌히 나와 시간을 보내주기로 했고, 나는 그에 보답하기 위해 나와 가장 친한 친구 한 명과 칭청산 등산 때 동행했던 친구 한 명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사실 휴일이 길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홀로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당시 초보 여행블로거였던 나로서는 다양한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만남 당일, 뜻하지 않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만나기로 한 친구들을 1시간 기다리게 했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기다리게 한 것도 있었지만, 아침에 학교 선생님께서 갑작스럽게 유학생 대상으로 부탁하신 일이 있어 그걸 처리하느냐고 늦었기 때문이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부랴부랴 달려가 만나자마자 미안하단 말을 연달았다.


"不好意思, 不好意思..."


상대방 친구들은 괜찮다며 머쓱해하는 내게 웃음으로 답했다. 이들에 대한 내 고마움은 아직까지도 크다. 글을 쓰다 보니 당시 내 마음을 대변하고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이나, 친구들을 만났던 사진 혹은 함께 목적지까지 가는 사진을 좀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다.


아무튼 그리하여 草堂北路역 B출구로 나와 20분간 걸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더워 택시나 자전거를 이용할까 했는데 여행의 묘미는 아무래도 근황 토크 아니겠는가. 내가 데리고 온 친구도 있었기에 서로 통성명하면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도착한 두보초당(杜甫草堂). 두보초당에 대해 딱히 조사를 하고 간 건 아니라서 어떤 곳인지 몰랐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두보초당은 이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추앙받았던 두보가 한동안 거주했던 곳이라 한다. 고난과 실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시성(詩聖) 두보가 마음의 안정을 얻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직접 가본 사람만 알 것이다.


두보초당은 티켓을 구입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일반 성인 기준으로 요금은 60위안, 한화로 약 1만 원 정도 한다. 꽤 비쌌다. 하지만 나처럼 학생 신분의 경우 학생증을 제시하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30위안에 입장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여행을 할 때, 특히 관광지 여행을 하고 싶은 유학생들은 어딜 가나 여권과 학생증은 필수로 들고 다니는 걸 추천한다. 그래야 외국인 신분도 입증할 수 있을뿐더러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해외 경험이 처음이었던 터라 돈을 한국에서 보다 3배 가까이 썼기 때문에 딱히 해당되진 않았지만...

두보초당 내부로 들어가면 정원이 바로 나온다. 정원에는 동백나무와 대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이곳 위치가 시가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마치 다른 세상인 듯 한적하고 고요하다. 물론 관광객이 많아 시끌시끌 하지만 나처럼 휴일이 아닌 평일에 온다면 쉼 없는 일상에서 오는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 차분한 휴식을 취하기 좋을 것 같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딜 가나 사람들도 많고, 어딜 가나 시끄럽고, 어딜 가나 정신이 없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에 빠져 시간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적한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부터 스스로 사색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느긋한 발걸음으로 초당 안을 거닐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초당에 들어서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석재 조각벽화(?)였다. 멀리서 봤을 땐 먹으로 그린 그림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다가가 바라보니 각각 다른 눈, 코, 입을 가진 사람들을 표현한 조형물이었다. 손 끝으로 만져보고 싶었으나 그 정도로 예의범절을 갖추지 못한 놈(?)은 아니었기에 눈으로만 감상했다. 엄청난 퀄리티의 작품이었다. 이게 바로 대륙의 장인정신인 걸까?


볼거리가 너무나 많아 바삐 움직였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윽한 차 냄새가 풍겼는데, 초당 안에서 차를 마셔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차(茶)가 있기 때문에 어딜 가나 이렇게 찻잔을 전시해놓고, 시음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었다.


(당시 나는 해외에서의 모든 경험을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남겨 놓던 시절이었는데, 중국에 있던 내내 6,0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에세이에 쓸려니 괜찮은 사진이 없었다. 당시 동행한 친구 한 명이 다행히 사진에 조예가 깊어 찍어준 사진을 많이 보내줬었는데, SD카드를 내가 잃어버리는 바람에 더 좋은 사진을 선보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좀 더 깊숙이 초당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친구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데 우리들 귓가에 청량한 피리 소리가 들렸다. 딱히 피리소리를 따라 들어간 건 아니지만, 걷다 보니 피리 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 한 할아버지의 하얀 수염과 입공에서 풍겨졌던 피리소리. 중국 전통 음악 같았다. 사실 할아버지 입가에 물려있던 악기가 피리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할아버지 맞은편 새장에 얌전히 앉아있던 새가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한 친구는 새장 밖을 나가고 싶어 발버둥 치던 모습처럼 보인다고 얘기했지만, 내 감성을 파괴하고 싶진 않았던 터라 나는 그냥 그 모습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이다음은 사람들 소리가 북적였던 곳으로 갔다. 푸른 나무 틈새 사이로 끝이 굉장히 뾰족해 보이는 탑이 보였다. 첫인상은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불국사 같았다. 한 1초 정도? 불국사를 가본 게 15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왜 불국사라고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탑은 그게 전부였나 보다.

여행에서 남는 건 역시 사진. 나에게 항상 먼저 다가와 주며, 나와 친하게 지내주려 노력해준 이 녀석들. 지금까지도 항상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날씨마저도 우리를 축복해주었던 이날. 특별한 만남 속에 날씨가 짓궂을까 걱정이 많이 됐는데, 다행히도 눈이 부셨다.


나는 전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보지 않았지만, 운이 좋게 접한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찍힌 사진을 보면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청두(成都)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한 순간이 담긴 내 모습을 보면 언제나 웃고 있다. 그리고 정말 자연스럽다. 그토록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말했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들은 왜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줬을까?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날 언제 봤다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일까? 왜 나라는 사람에게 그들의 시간을 쏟아부어주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처음엔 많이 들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만났던 인연들과 두 번, 세 번 재만남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도 이유가 없었고, 나 역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머리로는 도무지 알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감정의 영역이니까 말이다.  우린 그냥 인연의 끈이 연결된 것뿐이었다.

드디어 만난 초당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의 한 장면을 품고 있던 곳. 어느 관광지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가장 고스란히 감고 있었던 이곳. 바로 두보초당(杜甫草堂). 이렇게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곳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지만, 내 눈엔 마치 지우개로 사람들을 지운 듯했다.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보급형 DSLR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담겼다. 그만큼 이곳이 아름답다는 게 아닐까? 이번 에피소드의 제목처럼 정말 신선이 있었다면, 아마 이곳에서 지냈을 것 같다. 정말 숨만 쉬어도 머리가 맑아지던 곳. 생김새,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행복과 만족을 선사해주던 이곳, 두보초당(杜甫草堂).

내가 항상 웃고 있을 땐, 내 옆엔 언제나 아부(阿布)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웃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자유롭게 내 맘대로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 비록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는 사진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2018년의 5월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가장 아름다웠던 나를 추억하며 남길 수 있어 지금도 어김없이 기쁘다. 그리고 행복하다.


이번 에피소드도 결국 두서없이 끝나버렸지만,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느낀 것들이므로.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전 11화 Ep.11 우연히 만난 인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