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내가 지금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를 남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예전에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중국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보다 보면 내가 차마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시 만져볼 수 있기에 참 좋다. 그래서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라는 말이 있나 보다. 아무튼, 지금 이렇게 끄적일 수 있는 것도 당시 블로그 덕인데 블로그를 보다 보니 내가 항상 도입부에 이런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남다른 시선으로, 색다른 시선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사진과 좋은 감성 그리고 여운을 남기는 글을 남기고 싶은 Travel Artist, AlienStyle입니다."
이 친구를 만난 건 2018년 05월이었다. 내가 한창 중국 생활에 적응해나갈 무렵이면서, 중국인 친구들이 제법 많이 생겨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평상시와 같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는데 휴대폰 알림 소리가 들렸다.
"띠링"
인스타그램 알람이었다. 당시에는 지금 계정이 아닌 다른 계정에 중국 생활 적응기를 사진으로 남겨놓곤 했는데 내가 찍었던 사진이 맘에 든다는 연락과 함께 40일 동안 중국 일주 중인데 때마침 내가 머물던 청두成都에 오게 되어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군 입대까지 3개월 정도 남아서 재학 중인 대학에 휴학서를 제출하고, 유년시절 살았던 중국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여행에 빠져있는 상태였는데 나보다 2살이나 어린 동생이 홀로 이 큰 대륙을 일주한다는 게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내가 청두(成都) 매력에 흠뻑 취하는 데 일조해주기로 했다.
물론 나도 할 일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이 마음에 든 다는 이유로 연락하기란 쉽지 않기에, 그 용기에 보답하는 의미와 감사의 의미를 담아 내가 시간을 맞춰주기로 하며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며 후에 근처를 조금 돌아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계획이 잘 짜인 여행을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즉흥적인 만남도 꽤 즐겼던 것 같다.
우린 인스타그램을 수단으로 삼아 위치 파악을 하면서 약속 장소까지 갔다. 신기했다.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그것도 청두(成都)라는 도시에서 일면식 없는 두 남자가 만났다. 그리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푸근했다. 그리고 넉살이 좋아 보였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타국에서 같은 한국사람을 만나서 일까? 우린 금세 친해졌다. 오히려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중국에 고작 두 달 남짓 머문 나와는 달리 그는 중국어 실력이 유창했다. 내가 조금이나마 가이드를 하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미천한 중국어 실력이 드러나며 어버버대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결국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만난 곳은 춘시루(春熙路).
내가 먹어봤던 음식들 중에 꽤 괜찮은 곳이 이곳 춘시루(春熙路)에 분포해 있어서 그를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고자 했던 모든 음식점이 웨이팅 중이었다. 너무 속상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기에 차선책으로 평소 내가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로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았던 '놀부 부대찌개'였다. 서로 배가 너무 고픈 상태여서 사실 메뉴 선정에 그리 큰 갈등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우리는 어떻게 중국에 오게 됐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 간단한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며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때까지 기다렸다.
어색함을 깨는 데에는 역시 술만 한 게 없다. 한국음식점이라 국산 주류를 팔고 있었다. 비록 유일한 브랜드가 하이트 맥주였지만, 그래도 중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이곳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처음 만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도 잘 통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 넘치는 식사 자리를 가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던 시간. 식사를 마치고 춘시루(春熙路)의 랜드마크인 IFS 백화점 판다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던 그의 부탁을 들어주러 나왔다. 긍정 에너지를 가득 갖췄던 젊은 청년이었던 그. 아쉬움을 뒤로하며 우린 각자 갈 길을 갔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그렇다. 나쁜 인연은 없다고 해야 할까? 인연이라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일 뿐. 단지 좋은 인연으로 만난 서로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의 꿋꿋한 대립으로 인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져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으로 변질될 뿐. 아니 나쁜 인연처럼 느껴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대인관계라는 것을 항상 좋게 유지하는 것이 힘든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연락을 주고받진 않지만, 어느 순간 어느 누구와 만나 그 순간을 행복하게 그려내어 흔적으로 남겨놓았던 나는 그를 좋은 인연으로 기억하고 있다.
뭔가 황급히 마무리 짓는 듯 보이는 이번 에피소드. 난 참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