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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Mar 28. 2021

Ep.10 오피스텔 43층 홈카페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2018년 05월 11일 금요일.


내가 중국에 온 지 정확이 2달이 되던 날이었다. 마치 연인과의 만남을 세듯 50일 100일처럼 어느 특정한 날에 의미를 두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보낼 시간의 절반이 지났음을 암시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아침은 함께 교환학생을 온 동생들과 귀국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공강이었던 우리들이었기에 주말이라는 빌미를 틈타 함께 시(市) 중심으로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다.


청두(成都)에서 기숙사 밖으로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던 동생들이었기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살아생전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청두(成都)라는 도시를 좀 더 강렬하게 인상을 남겨주고 싶어서,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 나만 혼자 꼭꼭 숨겨 놓았던 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어느 오피스텔 43층에 숨어있는 카페 한 곳'으로 데려갔다.

춘시루(成都 春熙路) 역에서 내려 화려한 명품관이 즐비해 있는 타이 구리(太古里)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걷다 보면 쌍둥이 빌딩처럼 생긴 마천루가 하나 보인다. 우리가 이날 가려는 카페가 바로 사진 속 건물 43층에 위치해 있다. 이 오피스텔에는 37층과 46층에도 예쁜 카페가 있었는데 내가 동생들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카페로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게 더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보다는 가장 알맞은 높이에서 적당한 거리까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 같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 외국인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 카페에 가려면 오피스텔 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입주민이 아니기에 오피스텔을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들어간다고 해도 전용 카드가 없기 때문에 각 층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행했던 해결책으로는 경비원에게 각종 번역기를 돌려가며 내 의견을 전달하여 문을 열어달라한 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외국인처럼 보였겠지? 경비원은 우리를 꽤 귀찮아했다. 그래서 경비원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먼 길 떠나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바로 인터넷에 카페 이름을 검색하여 전화 한 통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카페 사장인지 직원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동행한 동생들을 포함해 나 역시 듣기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당시였기에 번역기의 힘을 벗 삼아 '나는 지금 너희 카페를 가고 싶어. 그러나 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내려와서 문 좀 열어줘.'라는 말만 전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러 한 여성이 나와 우리를 한 번에 알아보더니 밝은 미소와 함께 문을 열어주면서 카페로 데려가 주었다.

카페 이름은 The Place party.


동생들과 카페에 처음 오자마자 뱉은 말은 감탄사였다. 카페처럼 보였지만, 영락없는 가정집이었다. 얼마나 예쁘게 꾸며놓았는지 들어가자마자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제주에서 지내면서도 이색적이고 예쁜 카페들을 많이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진짜 홈을 카페로 꾸며놓은 곳은 처음이었다. 정말 '홈카페'에 왔던 것이다. 베이지와 우드톤의 인테리어 그리고 아이보리 색감의 조명이 너무 어울렸다. 


다음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창밖 너머로 보이는 춘시루(春熙路)의 네온사인이었다. 청두(成都)의 밤 속에 화려하게 수놓은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왁자지껄 너무 좋다는 동생들의 환호성에 괜히 뿌듯했다. 두 달 동안 타국에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힘들었을 텐데 나는 내 행복을 챙긴다는 이유로 나만 오롯이 돌보는 바람에 동생들에게 소홀했다. 하지만 이곳에 함께 옴으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던 오빠로서의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아이들의 웃음과 기쁨으로 채웠던 밤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5월의 청두(成都)의 거리는 저녁 7시까지 환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해가 지기 1시간 전에 오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모습, 수많은 자동차가 빽빽하게 도로를 가득 매운 모습같이 일상생활을 편하게 그리고 바쁘게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고, 날이 저물어가면서 새로운 복장의 사람들과 밤문화를 즐기러 나온 젊은 청춘들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랄까?

밤이 깊어지면서 하루 종일 종알대던 동생들의 입이 조용해졌다. 오늘 하루가 고단했나 보다. 그래도 S.N.S를 위한 사진은 놓치기 싫었을까? 저마다 자신들의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사정없이 찍어댔다. 아침엔 그렇게 가기 싫다며 귀찮아하고 징징거리더니, 결국 이렇게 좋아할 거였으면서 튕기기는.


이제 우리 마실 것 좀 시키자.

우리들의 여유로움을 좀 더 달콤하게 채워줄 녀석들. 동생들이 주문한 음료는 캐러멜 마끼아또와 초코 브라우니. 이곳에선 음료와 디저트가 함께 나온다. 아닌 음료들도 몇 개 있었지만, 대게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준다. 한 가지 좋았던 건 음료에 따라 고객의 기호에 따라 디저트 메뉴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가장 좋았던 건 이런 거 말고, 직원들의 친절함이긴 했지만.

볼수록 매력이 넘쳤던 곳이었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일까? 아니면 카페 사장님의 지인들일까? 만약 이곳에 폴라로이드 필름 카메라가 있었다면 우리 네 명의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 부탁까지는 드리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다 같이 떠난 곳이라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놓을 걸 그랬다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렇게 우리 넷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 됐다 싶다.

정말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의 묘미를.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 지를.


내가 지금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음을 말이다.


셀카를 잘 찍진 않지만,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내 감정을 온전히 담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 스스로 찍는' 사진을 제대로 찍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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