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내가 머물고 있는 기숙사는 6층 건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6층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층에 살면서 또 그 층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601호에 머물고 있었다. 새벽 4시만 되면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와 옹기종기 모여 아침 체조하는 소리가 들렸고, 새벽 6시가 되면 학군단 학생들의 아침 구보 소리도 우렁차게 들렸다. 평소 아침잠이 없기로 소문난 나였지만, 시차도 한국보다 1시간 빠른 데다가 매일 같이 새벽 4시만 되면 눈이 떠지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 놓은 게 무색할 정도로 일찍 눈이 떠지는 습관 아닌 습관에게 감사했다. 이유는 우리를 케어해주시던 선생님께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HSK 4급 시험을 대신 신청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신청을 하지 않는 듯했으나 두 달 전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끝자락에 손을 번쩍 들어 450위안이나 되는 돈을 덜컥 선생님 손에 쥐어주면서 HSK 4급 시험에 등록했다. 아마 중국에 큰 맘먹고 왔으니 어학 자격증 하나라도 취득해서 가야겠다는 아주 바람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험은 오전 9시에 시작. 내가 있는 곳에서 고사장까지 택시 타고 40분 정도 걸렸기 때문에 고사장 근처에 내려서 길을 헤매는 시간까지 계산해 넉넉히 1시간을 잡아도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샤워도 하고, 여유롭게 아침도 먹으러 생활광장(生活广场)으로 향했다.
사실 시험 당일날 이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달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부를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나를 꽤 좋아해 주던 중국인 친구들이 많아서 HSK 4급 문제집부터 기본서까지 다양하게 선물 받았는데, 1초도 펴보지 않았다. 친구들아 늦었지만 정말 미안했어.
비록 나는 책상에 앉아 단어장을 펴고, 중국어 교본을 달달 외우면서 고상하게 공부한 적은 없지만, 실생활에서 중국 현지인들과 몸소 오감으로 교류하며 듣고, 말하고, 쓰고 했기 때문에 시험장 가서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 달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 듯했지만, 알고 보니 엄청난 경험치가 내 안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역시 언어 공부는 책으로 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직접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익히는 게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면서도 올바른 길인 건 분명한 듯하다.
오전 07시 40분, 나는 띠디(滴滴) 앱을 켜서 콰이츠어(快车)를 불러서 고사장으로 출발했다. 5인치 남짓 한 휴대폰 화면 속에는 대략적인 소요시간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교통체증까지 감안하면 50분 정도. 도착하면 08시 30분 정도 될 것 같았다. 08시 30분까지 입실인데 속된 말로 정말 후달렸다. 입실을 하지 못하면 시험을 볼 자격을 박탈당한다. 내 사정을 정확하게 온전히 그들에게 전달할 중국어 실력이 되지 않았기에, 무엇보다 피 같은 내 450위안을 날리는 게 아닌가.
입실 가능 시간까지 2분. 08시 28분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그때 그 순간만큼은 우사인 볼트처럼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참 대단했다. 그 촉박한 시간 속에서 무거운 DSLR을 목에 걸고, 사진으로 남겨보겠다고 이렇게 사진도 찍고 했으니 말이다.
사진 속 '第三教学楼'라고 적힌 곳이 바로 이날 나의 실력을 테스트해보는 장소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초등학생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날 옛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시원함. 그리고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천장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펠러 선풍기까지.
고사실에 들어오자마자 당당히 외쳤다.
“워찌아오피아오쳥차이(我叫朴城材)!! “
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당당한 패기 놀란 감독관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날 자리로 인도해주었다. 나는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공부를 1도 안 했기 때문에 HSK 4급 자격증 취득 시험에 크게 기대를 하진 않았다. 내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온갖 수법을 쓸 수 조차 없을 맨 앞자리에 배정받았다. 당연하겠지만 한국인은 나 혼자 뿐이었고, 동남아 친구들과 프랑스 친구들도 많았다. 생각보다 유럽인들이 많아서 놀랐다.
위 사진을 보며 그날을 상기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벨 울림과 동시에 팅리(听力:듣기) 시험이 시작됐다.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확신을 가지고 푼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시험 접수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그 돈이 아까워서였는 지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아는 것을 토대로 들리는 것을 토대로 유추해내어 모든 문제를 풀었습니다. 나는 IBT(Internet-Based-Test)가 아닌 PBT(Paper-Based-Test)로 시험을 쳤기 때문에 쓰기 파트를 풀 때 병음은 알지만 한자를 모를 경우에는 앞장을 넘겨가며 적어서 문제를 풀었다. 뭐, 문제를 다 풀긴 했지만 그 당시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한 문제라도 제대로 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번 시험을 칠 땐 기필코 공부를 하고 칠 것이다.'라며 속기했던 기억이 난다.
1시간 30분가량 시험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각자 자기 나라 언어로 블라블라 떠드는 것 보니 한국이나 외국이나 같은가 보다. 분명 잘 봤냐 못 봤냐, 이 문제 답은 뭐냐 저 문제 답은 뭐냐 묻는 거겠지? 역시 안 봐도 비디오. 나는 말할 동무가 없으니 고생한 나를 위해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싶었다.
이제 살아갈 내 인생에서 이곳을 다시 오기엔 쉽지 않겠지. 시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스노우 애플리케이션으로 내 모습을 예쁘게 남겨놨던 영상파일이 있었는데, 귀국하고 휴대폰을 바꿔버리면서 이제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아쉽다. 좀 더 나를 예쁘게 사진으로 많이 남겨놨어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날 내 얼굴이 나온 건 이 사진이 유일. 누군지 모를 동상과 함께.
학교 정문을 나섰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내 발길을 붙잡는 녀석이 있었다. 내가 중국에서 가장 즐겨 마셨던, 가장 사랑했던, 하루에 3번은 꼬박꼬박 갔었던, 가격도 저렴하면서 맛도 좋았던 극강의 카페 미쉬에빙쳥(蜜雪冰城). 난 여기서 늘 징디엔카페이(经典咖啡)와 시엔메이뚜오뚜오(鲜莓多多)를 마시곤 했다. 이날도 맘고생 몸고생 다 한 나에게 블루베리 맛 나는 코코팜 시엔메이뚜오뚜오(鲜莓多多) 한 잔을 선물했다.
날도 좋아서였을까? 사진 속 음료 때깔이 기가 막힌다.
가장 최근에 중국에 다녀왔을 때, 이 맛을 잊지 못해 찾아 헤맨 적이 많았다. 그러나 같은 브랜드의 같은 메뉴를 많이 찾았지만, 청두(成都)에서 먹었던 그 맛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후배들이 중국 유학을 준비할 때, 중국 가면 꼭 한 번 먹어보라고 언제나 이 음료를 추천해주곤 하는데 이제는 이 음료가 없어진 듯하다.
다시 돌아와서, 난 모처럼만의 주말은 아니지만 먼 곳까지 나온 시간과 그 하루를 보내는 흐름이 아까와서 지하철을 타고 춘시루(春熙路)로 떠났다. 춘시루도 너무 많이 가봐서 사실 가도 딱히 할 건 없었지만, 그냥 사람들 많은 곳을 걷고 사진 찍는 게 좋았다. 빅맥이 유난히 맛있었던 맥도널드도 있고 말이다. 청두 도심 속 IFS 백화점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판다 엉덩이를 보면서 점심은 빅맥 버거 하나로 해결했지만, 중국 본토에서 외국어 신분으로 중국어 자격증 시험을 도전했다는 내가 스스로 너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이 또한 다시는 겪어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경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