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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Dec 19. 2021

Ep.14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청두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담은 퓨전 레스토랑, 无早小食


청두(成都)에서의 시간이 한 달 남짓 남았던 어느 날, 내 기억에 이날은 월요일이었다.


오후 전공수업이 갑자기 취소가 되어 남은 하루를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내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날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릴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떠났다. 유학생 신분이라 하여 학업에만 집중하기엔 너무 아까웠으니까.


이곳에서 나는 몸소 체험하며 중국어를 익혔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감성이 넘치는 곳을 찾는 건 내 기준에서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 당시 때만 해도, 청두의 유학생이 타도시보다 많지 않았을뿐더러 나처럼 이리 적극적으로 활보하는 유학생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정보를 찾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중국의 네이버라 불리는 바이두(百度) 웹 사이트에서 얼마 알지도 못한 중국어를 토대로 검색하고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가보기로 결정한 동네는 동문대교(东门大桥). 롱취엔이(龙泉驿)에서 지하철을 타고 40 정도 달려온 곳이다. 내가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느꼈던 첫인상은 시중심(市中心) 아니지만, 춘시루(春熙路) 가까운 지리적 장점과 젊음의 장소라는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 시끌시끌한 소음들 사이에서 중국 특유의 감성을 느낄  있었다.

내게 '내가 생각하는 중국 특유의 감성'은 별다를 게 없었다. 시원시원하게 뻥 뚫린 시야와 뭐든지 큼직큼직한 건물과 조경, 그리고 많은 사람들. 동문 대교 역에서 A 출구로 나오면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은 뒷 이야기에서 이곳의 야경도 선보일 테지만, 정말 아름다운 야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곳에 위치한 숨은 맛집을 찾아온 것이기에 감상을 멈추고, 발걸음을 옮겼다.

无早.


내가 도착한 곳.


아침이 없다는 뜻인가? 이 퓨전 레스토랑의 정식 명칭은 无早少食. 번역기로 검색해보니 '이른 아침 금지'라는 뜻으로 나온다. 아직도 이 가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게가 너무 예뻤다. 포장마차 같으면서도 일본의 감성을 담고 있는 듯이. 그러나 가게 앞 인력거가 이곳이 중국임을 확실하게 내게 인지시켜주었다.


이곳에선 가볍게 책을 읽을 수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도, 꼬르륵 소리 나는 내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수도 있었던 다양한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보통 블로그 포스팅 목적으로 글을 썼다면, 지도를 일일이 캡처하여 어떻게 가야 이곳을 만날 수 있는지 상사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청두라는 도시를 자유롭게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가볍게 이름만 남기고 싶다. 자신이 가기로 한 목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오는 여행 본질의 즐거움을 내가 굳이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곳을 찾아가는 동안 만났던 건물들, 사람들 그리고 날씨까지. 혼자 찾아가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처럼.

가게 문을 열기 전, 대기자 명부에 내 이름을 작성했다. 문 앞에 다가서면 직원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데 아마 자리가 없어 잠시 대기하라는 것보단 이곳을 제대로 느낄 준비를 하는 시간을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뭐 사실 나도 당시엔 이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다.


하얀 A4용지 위엔 이곳에서 무얼 즐길 수 있는 지를 상세하게 나타낸 메뉴판과 오래된 스탠드가 모든 메뉴가 자신 있다는 듯 아우라처럼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고동색 나무 문이 '끼익' 열리면서 눈앞에 펼쳐진 따뜻한 조명. 외관에서 느꼈던 낡고, 포근한 감성만큼 달달했다. 그리고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홀로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도 나뿐이었다. 최대한 현지인인 듯 행동했지만, 그들 눈에는 내 모습이 온전히 외국인이었나 보다. 그래도 한국인인 나를 무시하지 않고, 누구보다 친절하게 또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발음 하나하나 또박또박 읊어주며 그림과 함께 메뉴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 직원의 추천을 받아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찰칵찰칵.


메뉴를 기다리는 텅 빈 순간, 목에 걸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위기, 가장 좋아하는 구도의 조명,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가장 빛나게 보여주는 필라멘트를 담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저녁 먹을 시간이 꽤나 지난 상태여서 배를 채울 수 있는 오믈렛을 주문했다. 비주얼은 여느 오믈렛과 별 차이 없었지만, 곁들여 먹는 소스와 노란 달걀 안에 숨겨진 거무스름한 밥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흑미밥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냥 밥이나 먹자.

아마 내가 궁금해한 모든 것을 물어봤다면 아마 직원도 굉장히 귀찮았을 것이다. 분명하다.


이 오믈렛은 소스가 굉장히 특이했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했고, 육각형의 고추 조각이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사로잡아 담백함으로 승화시켜주었다. 그냥 맛있었다는 말을 있어보기에 표현해봤다. 진짜 맛있었다. 오늘 하루 수업을 쿨하게 던져버린 내게 칭찬해주고 싶은 맛이었다. 하하.

밥 먹는 시간 외에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던 나. 같은 공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멋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며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보다 중국에서 인정을 많이 받았다. 신선하며 충격적이었다.


내게 참 좋은 기억이 많은 나라 중국. 논외지만, 이런 중국이 올바르지 못한 지도자를 만나 욕이란 욕은 다 먹는 게 난 너무 안타깝다. 알고 보면 참 매력이 많은 나라인데 말이다.

이곳을 떠나기 전, 지나가는 행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내 모습.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았던 것 같았는데 사진 속 내 모습은 차분하다.

그새 해가 졌다. 그리고 붉은 조명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목에 걸린 카메라를 다시 켜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내 모습을 촬영했다. 비가 올듯한 날씨로 바뀌어 바람이 제법 많이 불었지만, 영상 속 내 모습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이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


평소의 나였다면, '과연 다시 이곳에 발자국을 남기러 올 수 있을까?'라는 아쉬움 남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겠지만, 이날만큼은 피곤한 탓인지 몰라도 어떠한 질문도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후회 없던 일정이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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