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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재 Jan 06. 2022

Ep.15 이젠 안녕, 잘 있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분명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추억이 되었다.'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동안 내가 그려낸 이야기 모두 당시의 작성해놓았던 글을 토대로 옷을 입힌 것뿐이었다.

 나는 고작 중국에서의 해외 경험이 전부라고 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끝맺어 버리는 것 같아 영상을 만들 때도, 글로 기억을 남겨 놓을 때도 흐리멍덩하게 마무리를 짓곤 했다. 이렇게 '안녕'이라는 말을 뱉어본 것도 오랜만이지만, 얼마 전 내가 20대를 놓아주었듯이 새롭고 반짝이는 기억들로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해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나의 청두(成都)를 잊어보고자 한다.

2018년 06월 27일.


 이 사진을 끝으로 나는 이들과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이날이 오기까지 약 4개월. 매 순간 누구보다 느리게 보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에 빠져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게 잠시 브레이크 밟았던 순간도 있었고, 발길 닿는 대로 물 흘러가듯 보냈던 날도 많았다. 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었던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몰랐기에 그 시간도 왕창 즐겼던 듯하다. 내가 사교성이 좋지 않은 편인데 그래도 떠날 때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주소록에 100명 이상의 연락처가 있었다. 나름 사랑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하루에 1명 꼴로 중국인 친구를 사귀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았던 순간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짧지만 작은 오해로 인해 못난 사람이 되었던 순간도 있었고, 그로 인해 며칠간 심신이 지쳤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멘털이 유리 었기에 자잘한 사건사고 하나에도 세상과 단절해버리는 나였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결국 한국과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있어 눈물을 훔친 적도 많다. 난 도대체 누구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언제쯤 허락이 될 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던 것은 들리지 않는 나만의 아우성이었고, 이 또한 나를 깎아내려갔다. 도망도 쳐봤고, 휴식도 취해봤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돌봐주셨던 담당 선생님께서 먼저 대화를 걸어주셨고, 6월 27일 이날이 마지막 식사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띠링" 울리는 내 휴대전화 알림음. 선생님의 메시지였다.


 "수요일 저녁에 다른 외국인 유학생과 유학생 담당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너도 시간을 내서 우리와 함께하면 좋겠어!"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차라리 밖에 나가 바람이나 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낯익은 얼굴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어색한 얼굴들도 있었다. 다 같이 마주 보고 앉아 자기소개를 하며 웃음꽃이 피는 분위기 속 화기애애. 나도 어느새 웃고 있었다.

시간을 돌려 5월 30일.


 나는 친구네 화방에 놀러 왔다. 이 친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친구가 나와의 관계를 특별하게 해 주었다. 1년 전 제주 어느 곳. 아마 학교였겠지? 이 친구는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내 기억 속엔 없었지만, 내가 이 친구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나 보다. 이 친구는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해 먼저 다가와준 착하고 착한 친구 녀석이다. 녀석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가? 여자니까.


 친구의 화방은 태평원(太平园)이라는 지역에 있었다. 내가 머물던 학교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꽤 거리가 있어 가는 데만 심신이 지쳤던 걸로 기억이 난다. 지금이 되어서야 나도 서울시민이라 지하철이 익숙해졌지만, 이때만 해도 평생 타 본 지하철 횟수보다 중국에서 타 본 횟수가 훨씬 많았을 정도였으니 내 얼마나 촌놈일 쏘냐. 하하.


 그리고 도착. 어색함이 서로의 얼굴에서 묻어났지만, 그 어색함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붓을 들었다.

 좀 더 시간을 돌려 5월 20일.


 유학생들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말 그대로 견학. 청두 내에 위치한 예쁘다고 소문난 Polus International College(국제 표방 직업학원)에 다녀오는 일종의 소풍이었다. 예술 및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 그런지 도예체험도 할 수 있었다. 참여 비용이 있어 나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베트남 유학생 친구 녀석은 80위안이라는 큰돈을 지불하고 사기를 빗어 1주일 뒤에 소포로 받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참여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훠궈 한 번 안 먹으면 됐었는데 말이지?


 이곳의 학교는 우리나라 연세대와 굉장히 비슷했다. 건물 벽면 곳곳에 푸릇푸릇한 덩굴이 가로세로 얽혀있었고, 교내 곳곳이 자연과 어우러진 곳이 많아 휴양지에 놀러 온 느낌이 강했다. 학생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꽃이 피었던 카페는 일본 특유의 감성까지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이날 찍었던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 한 컷.


 글쎄, 이유는 딱히 없다. 인물사진을 못 찍기도 하지만, 그래서 배경을 담은 사진을 주로 찍는 나이지만, 아직까지 사람을 담는 게 두렵다. 그 카메라 렌즈에 나를 담는 건 더 두렵고. 왠지 모를 이런 감정을 나는 이 사진에서 느꼈는지도 모른다. 역시 예술의 세계는 어렵다. 내 감정을 어떤 수단으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게 아직 내겐 허락되지 않은 영역인 듯하니까.

 시간을 아주 조금 다시 앞으로 돌려보니, 쓰촨 성에서 유명한 요리들을 나도 꽤나 즐겼었다. 중국 쓰촨(中国四川)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건 훠궈(火锅)지만,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음식은 바로 촨촨샹(串串香)이다. 촨(串)이라는 한자가 마치 꼬치에 음식이 꽂혀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진 음식이라 한다. 샤부샤부와 느낌이 비슷하지만, 야채가 주를 이루는 샤부샤부와는 달리 촨촨샹은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할 것 없이 다양한 고기와 신선한 야채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량의 팽이버섯에 얇은 대패 소고기로 돌돌 감은 꼬치가 가장 맛있었다. 무한리필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무게별로 값이 매겨지기 때문에 입맛에 따라 즐기면 아주 좋은 한 끼 식사가 될 듯하다.

  번째로 소개할 쓰촨성 명물 '카오위(烤鱼)'. 우리나라의 고등어조림과 비슷해 보이지만,  또한 직접 맛을 본다면 엄청난 차이를  끝으로 느껴볼  있다. 고등어조림은 약간 소주와 궁합이 맞는 음식이라   있다면, 카오위는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이다. 카오  역시 맵기를 조절할  있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웨이라(微辣) 보통의 맵기에 기름기 조금 있을 정도의 맛이 가장 맞을  있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  잔과 공깃밥 추가로 든든한 하루를 보낼  있다.


 내가 왜 갑자기 음식 소개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위 두 가지 음식 또한 내 뇌리 속에 추억으로 박혔나 보다. 아직도 사진만 봐도 그 맛이 기억날 정도니. 이래서 추억이 무섭다 하나 보다.

 2022년 01월 06일.


 이들 없이 내 삶을 살아온 지 3년 7개월이 흘렀다. 내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은


 "너희 없는 한국에서 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난 그럴 자신이 없어."


 글쎄, 짧다면 짧을 수도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시간이 흘렀다. 과연 난 이들 없이 잘 살았을까 못살았을까? 이 질문을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던져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굳이 오늘 이 이야기의 향기를 지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갖 질문만 흩날리는 결말을 스스로에게 남겼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감정은 기억은 순간일 수 있지만, 기억이 남긴 감정은 영원하다는 것. 나는 앞으로도 이 감정과 감동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감동을 남은 인생을 가득 채워 매울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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