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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Jan 08. 2022

(칼럼) 편도체와 두려움, 네 정체가 무엇이냐?

한국강사신문 [강은영의 뇌과학 이야기]

나는 어둠이 무섭다. 어릴 적 긴 골목 끝에 있는 집에 살았는데 어두울 때 엄마가 심부름시키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중간에 있는 가로등까지 숨을 멈춘 채로 냅다 달려야 했다. 잠시 숨 한번 고르고 다시 전력 질주. 골목 끝에 다다르면 턱까지 차오른 숨에 집으로 돌아갈 두려움이 더해져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무서워서 가기 싫다고 말할 법도 한데 매번 군소리 없이 심부름을 해냈다.    


어둠을 향한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어둠이 무섭긴 하다. 내가 상상하는 가장 무서운 순간은 한밤중에 불빛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 나 홀로 있는 것이다. 이 나이에도 귀신을 무서워하다니! 하지만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는 단순히 어둠이 아니다. 어둠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것을 오로지 혼자 감당해내야 하는 그 순간이다.


올해 13살인 둘째는 첫돌 무렵 뇌성마비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후 십 년 넘게 나를 내려놓고 장애아 엄마 역할에만 충실히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혼자 서고 걷고 뛰는 등의 평범한 발달 과정 하나하나가 수년씩 걸릴 만큼 버거웠다. 예후를 알 수 없고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할 수 없어서 스스로 희망 고문을 해야 했다. 과연 이 캄캄한 길에 끝이 있을까? 어릴 적 숨을 참고 냅다 달렸던 골목처럼 언젠가는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둠을 무서워했기에 나 스스로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어둠 속에 있을지언정 겁쟁이였던 적은 별로 없다. 오히려 과감한 결단을 내리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해왔다. 둘째 아들도 여러 임상 시험에 참여하고 미국까지 가서 다소 위험한 수술을 받게 했다. 두려울수록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빛을 찾아간 것이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쥐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더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고양이 귀를 물어뜯기도 한다. 편도체가 없는 원숭이 역시 뱀을 두려워하는 대신 탐구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연구들로 편도체가 공포감에 관여한다고 밝혀졌는데 유난히 겁이 많거나 감정이 예민한 사람은 편도체가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방법으로든 편도체만 잘 다스리면 두려움, 공포 같은 감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편도체의 흥분을 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뇌에 긍정적인 언어 정보를 지속해서 주는 것이다.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나에겐 좋은 일이 자꾸 생긴다.' 등의 말을 끊임없이 하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쉬운 방법이지만 그리되지 않는 이유는 실천하지 않거나 두려움을 덮을 만큼 강력하게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도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내게 있었던 듯하다. 안 가면 그뿐인 골목길을 수도 없이 뛰어다녔다. 공포심을 느낀 채로 심부름을 완수하고 돌아왔을 때의 쾌감도 즐겼던 것 같다. 눈을 감고 걸으면 한 발짝도 떼기가 어렵다. 둘째를 키운 지난날에 나는 눈을 감고 걷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발을 떼기가 두려웠지만, 아이를 책임져야 하기에 어둠 속을 걸어 나갔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있고 편도체의 흥분도 조절할 줄 아는 지금에 와서는 무서워서 못 할 일이 별로 없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혼자 놓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둠이 무섭고 두렵지만 피하는 대신 기꺼이 어둠 속을 뚫고 가려 한다. 어릴 적 가장 두렵던 어두운 골목길을 내달리는 심정으로. 새로운 일이나 큰 도전을 앞두고 두려움이 기승을 부린다면 이렇게 외쳐 보자. "편도체야 진정해! 나는 할 수 있어. 잘 안되더라도 괜찮아. 아무렴 어때. 나는 나를 믿어!"



*용어 설명: 편도체(amygdala)

편도체는 아몬드 같은 모양으로 공포나 화 등 감정과 관련된 학습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서적 처리나  학습과도 관련이 있는데 공포 조건화 연구에 따르면 평범한 이미지를 매우 불쾌한 소음과 짝지어 보여 주면 본래부터 혐오적인 이미지였던 것처럼 반응한다. 또한  더 큰 정서적 강도로 경험한 사건이 더 잘 기억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억 증진 효과라고 한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강은영 칼럼니스트는 국제뇌교육대학원 석사를 취득한 국가공인 브레인 트레이너이다. 일류두뇌연구소 대표이자 온라인 프로그램 ‘체인지U 스쿨’을 운영 중이다. 한국뇌과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뇌교육 전문 잡지 『브레인』의 칼럼도 쓰고 있다. 뇌교육과 부모교육 전문강사로 15년 동안 교육 및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글쓰기, 책쓰기, 습관코칭, 감정코칭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강의와 저술 활동으로 뇌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리는 중이다. 저서로는 『일류두뇌』 『당신의 뇌를 바꿔드립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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