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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빼면 사실상 남남이다

by 곰아빠

*상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남편과 연애 후 신혼 때까지는 정말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약간 난임 문제가 있어서 마음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도 저희에게 소중한 축복이 찾아와서 세 가족이 되었어요.

남편은 가장으로서 충실했고 저는 전업주부로서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어렵게 낳은 아이다 보니 둘 다 아이에게 미친듯이 헌신한 것 같아요. 그렇게 4년이 지났어요.


얼마전 퇴근한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의 대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오늘 00이가 뭐 했는데.."

"회사 사람이 그러는데 00이 정도면.."

끊임없이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전부 아이 이야기.


어제는 같이 어디를 다녀올 일이 있어서 엄마가 두 시간 정도 아이를 봐주고 저희 둘만 볼 일을 보고 잠시 카페에 들렀어요. 저는 일부러 남편 직장일도 물어보고 그랬는데 남편은 간단히 대답하고 바로 또 아이 이야기를 했어요.


아이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맞지만 이제 아이가 없으면 저희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남편이 저에 대해 궁금한 것도 없는 느낌도 들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온 마음을 다해 아이에게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부부라는 관계가 ‘부모’라는 역할에 묻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아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화기애애하다고는 해도, 문득 그런 대화 속에 ‘당신과 나’가 빠져있다는 걸 느끼면 마음 한켠이 쓸쓸해질 수 있어요. 남편이 아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듯한 태도도, 어쩌면 관계가 ‘부부’보다는 ‘아이를 중심으로 한 공동 양육자’로만 굳어져 버린 결과일 수 있고요.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관계는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감정을 자각하고, 대화를 다시 나누고 싶어 한다는 그 마음 자체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작점’이에요.


우선,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고 부드럽게 남편에게 전해보는 것이 필요해요.

“당신이 아이 얘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나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 그런데 요즘 문득, 우리 둘이서만 나누는 이야기나 감정이 조금 그리워졌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세요.


이건 남편에게 ‘당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사이도 돌보고 싶다’는 따뜻한 요청이 되니까요.


그리고 나서 아주 작고 가벼운 일부터 다시 시작해보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잠든 뒤 10분만이라도 남편과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어땠어?”라고 묻는 시간을 정례화한다든가, 예전처럼 둘이 좋아했던 영화나 음악을 함께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 없이도 우리 사이가 따뜻하다는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에요. 지금은 아이가 너무 중심이 되어 있어서, 부부가 아이가 없는 대화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 수 있어요. 처음엔 서툴고 겉도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 시간을 반복하고 채워나가다 보면 아이 중심의 대화가 ‘우리 둘의 대화’로 자연스럽게 넓어질 거예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부부가 부모로서 함께 성장한 것처럼, 이제는 ‘다시 부부로서 관계를 세워가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는 걸요. 부부의 관계는 아이에게도 가장 큰 정서적 울타리예요.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고 따뜻하게 소통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가족의 분위기를 훨씬 건강하게 만들어줘요.


사연자분의 섬세한 감정은 이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작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느끼기 전에, 아주 작은 말 한마디로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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