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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미경 Oct 27. 2020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게
정말 좋은 걸까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_5화

‘심리적 가시성(psychological visibi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내면에 숨어 있는 마음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는 거겠지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이가 꽃병을 깼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다치지 않았어? 엄마가 치울게.” 꽃병을 다 치운 다음에, 왜 꽃병을 깨게 되었는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꽃병에 있는 꽃이 예뻐서 뽑아서 엄마에게 주려고 했어.” 아이의 진짜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꽃병이 엎어져서 깨졌네. 속상했겠다. 엄마가 예쁜 마음 고맙게 받을게. 고마워.” 이렇게 아이와 엄마가 심리적 가시성을 자주 겪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는 아이의 숨은 마음을 알아줬더니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후에도 아이와 소통할 때마다 아이의 숨은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아이도 점점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게 될 겁니다.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또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를 대하게 될 겁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맞벌이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하루 동안 했던 일을 털어놓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만화책 이야기, 유튜브에서 본 깜짝 영상 등을 부모에게 알려줍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잘 놀았을 텐데, 왜 이렇게 엄마 아빠에게 찰싹 붙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놓는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엄마가 잘 아는 이야기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연인 사이를 생각해보세요. 한창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밤늦게 통화하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느라 잠을 못 자기도 합니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이 말한 심리적 가시성의 핵심은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반응’에 의해서 인지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의 말과 행동에 어떤 피드백을 하느냐, 연인이 나의 수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는 소중한 아이’라는 것, ‘나는 사랑받는 연인’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잘 다룬다는 건, 상대의 감정을 ‘눈에 보이게’ 확인해주는 일입니다. 상대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을 때 웃어주는 사람과 짜증을 내는 사람 중에서 누가 그 관계를 잘 풀어나갈지는 분명합니다. 상대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 사람의 감정에 똑같은 감정을 표현해야만 ‘심리적 가시성’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그 부분은 이해가 가네요’ ‘그런 점은 흥미롭군요’라며 적절하게 반응을 보여준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토론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데도 이야기를 잘 이어나갑니다. 반면 입장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불쾌한 사람들이 있지요. 바로 상대방의 심리적 가시성은 아랑곳하지 않는, 오로지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만 해준다면,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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