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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미경 Oct 27. 2020

싫어도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면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_8화

오늘날 감정 노동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 자기 소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진상 고객에게 화를 꾹 참고 회사의 방침에 따라 방긋방긋 웃으며 대응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고객이 나가면 동료들과 대화하며 그 사람의 뒷담화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한편으로는 월급 때문에 억지로 웃어야 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듭니다.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고 뒤에서 안 좋은 소리나 하는 스스로가 싫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앞으로는 고객 앞에서 로봇이 되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은 도려내서 어딘가로 보내버리고 기계적인 미소를 띠며 고객을 응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자기 일에 대한 감정도 함께 사라집니다. 보람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감정은 자기 내면의 자아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감정이 거짓이거나 억지로 꾸며낸 것일 때, 내면의 자아와 실제 자아가 나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가짜라고 느끼게 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소외로 이어집니다.      


안타깝게도 감정 노동의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완전히 없어지기 어렵습니다. 감정 노동의 문제의 핵심은 내가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꾸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능동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욕구를 찾아서 들어주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물건이 잘못됐다고 마구 화를 내요. 그러면 교환이나 환불을 원하시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또 자기가 꼭 교환이나 환불을 원하는 건 아니라고 해요.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와요. 

‘아, 저 사람은 항의를 해서 뭔가 다른 걸 얻고 싶은 것이구나.’ 

그래서 ‘고객 사은품으로 나온 물건이 있는데, 저희가 죄송하다는 뜻으로 발송해드리려고 합니다’라고 말해요. 그러면 ‘내가 꼭 그런 건 아니고…’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발송하면 끝이에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런 항의를 받으면 종일 짜증이 났어요. 고객에게 화도 많이 냈고요. 그런데 그런다고 제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더라고요. 주변 동료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쁜 고객에 대한 험담만 나누다 보면 내 인생 자체가 허접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요. 저 사람이 허접한 거니까 내가 거기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고. 이제는 항의하는 고객이 불쌍해 보일 때도 있어요. 인생이 참 가엽다. 오죽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이 난리를 칠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친절한 사람은 아니에요.”     

이분은 적대적인 사람을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방법인 ‘욕구를 찾아서 들어주기’를 시도한 경우입니다. 사은품을 달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풍기면서 과하게 화를 내며 항의를 하는 진상 고객에게 사은품을 하나 던져주어서 바로 ‘상황 종료’를 시키는 거죠.     


뭔가 원하는 게 따로 있는 사람이 나에게 엉뚱하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우습게 느껴집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해야 하지만, ‘저 사람도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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