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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미경 Oct 27. 2020

가끔 내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느껴진다면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_9화

    “그 친구는 항상 하소연을 길게 해요. 정말 그 친구의 말대로 유독 운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짜증이 나요. 자기 능력은 뛰어난데 회사가 알아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몇 년째 해요. 처음에는 위로도 해주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줬어요. 회사를 진짜 그만두고 싶은 줄 알고 새로운 회사를 소개해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작 사표를 내지도 않아요.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너무 좋은 일이 생겼다며 마구 자랑하다가 어떨 때는 갑자기 울기도 해요. 그러면 또 마음이 약해져요.” 

    

주변에서 숱하게 접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일도 잘하고 능력이 좋은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은 경우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만 집중하고, 정작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누구나 이런 모습을 조금씩은 갖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릴 때는 이런 경향이 강하죠. 초등학생 때를 생각해봅시다. 선생님한테 한 번 혼나면 앞으로의 인생 전체가 망한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잠들기 전에 온갖 상상을 합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을 거야. 앞으로도 선생님은 나를 계속 괴롭힐 거야. 그러면 친구들도 나를 싫어하게 되겠지. 엄마가 이 일을 알게 되면 나를 야단치겠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이렇게 상상이 마구 가지를 치고 퍼져나갑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라는 게 있습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떨 때는 매우 높고, 어떨 때는 매우 낮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태도도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어제는 ‘당신이 있어 너무 고맙다’고 애정을 표현했다가 오늘은 ‘왜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느냐’고 화를 냅니다.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행동’을 과하게 합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아야만 하므로 본인을 마음이 여리고 우울하고 보호하고 배려받아야 하는 불쌍한 위치에 둡니다. 


주관적인 감정에 취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상식도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자기가 겪은 경험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왜곡해서 과장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물론 이런 환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에 대한 소설을 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감정에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주인공’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핵심은 바로 ‘감정의 객관화’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듯이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자존감을 갖춘 한 사람으로서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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