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_10화
인간은 외상 후 스트레스만 겪는 게 아니라,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은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건을 겪거나 심적 외상을 받은 뒤, 이를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긍정적 변형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그 외상을 통과함으로써 성장했다고 느끼는 겁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심리학 교수 로런스 캘훈(Laurence G. Calhoun)과 리처드 테데스키(Richard G. Tedeschi)가 개발한 외상 후 성장 척도 테스트 문안을 살펴보면, 이 긍정적 변형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 문안은 네 가지의 요인을 점검합니다.
1. 자기 지각의 변화: (예)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대인관계의 깊이 증가: (예) 나는 이웃의 필요성을 이전보다 더 인정하게 되었다.
3.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예) 내 삶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4. 영적, 종교적 관심의 증가: (예) 영적・정신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더 커졌다.
우리가 존경하는 이들, 신뢰하는 이들 중에는 외상 후 성장을 겪은 이들이 많습니다.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해서 아주 대단한 성취를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끔찍한 참상을 겪었던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하루에 한 컵 배급되는 물을 받으면 반은 마시고 반은 면도를 하는 데 썼다고 합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려 했던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행동이지요.
외상 후 성장은 편안함과 안락함의 단계가 아니라, 자아실현과 정신적 가치 실현의 단계입니다. 신체적, 생활적으로는 불편하고 힘든 삶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외상 후 성장을 이루어내려면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지도 반드시 요구됩니다. 혼자의 힘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타인도 존재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상처를 극복하려고 해도 ‘타인에 대한 믿음’은 정말 중요합니다.
뜻밖의 재난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는 말을 공통으로 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느닷없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되면, 세상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자신과 특별한 관계도 없으면서 ‘사심 없는 호의’를 베푸는 이들을 통해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가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남아프리카의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27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감옥을 나오면서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감옥을 나선 뒤에도 계속 그들을 증오한다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벗어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내가 어떤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