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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Dec 19. 2024

엄마, 점심은 먹었어?

엄마를 걱정하는 말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아이들을 안팎으로 챙기다 보면

오전시간이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어쩌다 점심을 거르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아이 하교 후 간식시간에

내가 아무거나 허겁지겁 집어먹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말했다.


"엄마 잘 먹는다."

"엄마 지금 너무 배고파. 점심을 안 먹었어."

"왜? 맛이 없었어?"

(나도 자기처럼 급식을 먹는다 생각함.)

"아니, 너무 바빠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어."


밥 거르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 여기는 아들은

순간 얼음이 되었다.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면 부모부터 강해져야 한다.


속상해도 기쁜 척.

복직 전처럼 업무 효율이 오르지 않아 속이 타던 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들 앞에서

회사 일을 다 물리치고 돌아왔노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힘들어도 가뿐한 척.

둘째가 있어 불룩한 배 위에 첫째를 얹다시피 안고

보글보글 끓는 이유식을 저었다.

힘들었지만 안아달라는 첫째를 마다하지 못했다.


화나도 태연한 척.

하필 아이가 아파 정신없는 날

남편이 회식으로 술에 푹 절어 퇴근이 늦었을 때

비밀번호를 바꿔 말아 고민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잠자리에서는 여느 때처럼

그림책을 읽었고 자장가를 불렀다.


부끄러워도 용감한 척.

유치원 주관 학부모 초대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던 날

부끄러워 손에 땀이 났지만 용감한 척

아이들이 이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행복했노라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도 이제 조금 지쳤나 보다.

숨기고 싶은 모습들을 꾹꾹 누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로 변하여 터져 나왔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거짓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가는 기분...


거침없이 아이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는 나를 보며

무엇을 위해 강한 "척"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밤마다 함께 하는 잠자리 대화에서

힘들고 속상하고 화나고 부끄러운 일을

먼저 털어놓았다.

강해 보이는 부모 안에서 아이는 불안해했다.

오히려 부모도 이렇게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안도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학원 다녀온 막내가 날 만나자마자 내 눈부터 가다.


"엄마 안 볼 테니까 굳이 눈 안 가려도 돼."

"안 돼! 진짜 깜짝 선물이란 말이야!

자, 눈 가렸으니까 이제 손 내밀어봐."



"엄마가 좋아하는 쌀과자?! 어디서 났어?"

"오늘 학원에서 간식받았는데

쌀과자 보니까 엄마 생각나서 안 먹고 가져왔어.

또 바빠서 점심 못 먹었을까 봐.

엄마, 점심 먹었어?"


무심한 듯 툭 말을 던지고 가방을 풀러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코 끝이 찡해진다.

녀석, 많이 컸다.


솔직해지길 잘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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