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애증이다
식재료 비용이 만만치 않게 많이 든다.
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아이들 방학이 겹친 데다가
민족 대 명절 설까지 앞두고
가계 경제 위기를 절감한다.
이에 우리 부부는 오늘의 소비에 대한
극적인 합의에 이르러 결제까지 타결,
그렇게 냉동 소분용기 42피스를 샀다.
택배 박스가 도착하고
그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였음을 깨달았다.
한적한 주말 오후
박스만 열어둔 채 일주일이 지났다.
식비를 줄이고자 하는 것은 표면적 이유였다.
주먹구구로 정리된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냉동 보관 용기만 있으면 마법같이 정리되어
꽉 막힌 속이 뻥 뚫릴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하나 비닐 포장까지 되어있는 용기가
부엌 길목에 자리 잡고 나서
밤고구마가 목구멍으로 쑥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더는 미뤄둘 수 없었다.
내 소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혼자 앉아 느리적거리며 비닐을 까서 쌓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에 만리장성이 세워져 있다.
누가 사이다 좀...
막상 보관하려니 어떤 용기에 넣기에는 좀 작고
그것보다 큰 것에 넣으려니 또 너무 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속이 왈칵 뒤집히고.
일단 장 봐온 다짐육과 냉동 볶음밥을 소분해 넣었다.
새해 먹으려고 산 떡국 떡도 두 통에 나눠 담았다.
비닐에 넣어두면 냉장고 문 열다 떨어지기도 하는데
착착 쌓아 넣으니 좋긴 좋더라.
'이렇게 하나씩 정리하면 되는 건가...'
일단은 여기서 마무리.
이 정도만 해도 참 장하다.
제발 남은 용기들도 찬장에 처박히지 않고
냉장고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자고 풀세트를 샀을까.
이제 와서 되돌아본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용기를 샀을 때
가장 큰 용감했을 때였다.
그래도 그 용기 덕에 느려도 조금씩
내 공간 중 일부가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
싫지 않았다.
아직 나에겐 남은 "용기"가 있다.
나에게 조금씩 천천히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