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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끝에 올라선 체중계

내가 알던 그 숫자가 아니었다

by 빈틈


거실을 오가며 무언가 거슬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인 "그것"은 아까부터 나를 부르는 듯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녀석이었지만

연휴 끝이라 그런지 더욱 신경 쓰이던 터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것"을 사정없이 밟고 올라섰다.

숫자는 빠르게 올라가다 어느 틈에 멈춰 섰다.

내가 익히 봐 오던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그 수보다 좀 더 커졌다.

앞자리가 바뀔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랄 만했다.


그러고 보니 연휴가 시작되고 하루가 채 지나기 전부터

이미 변화는 예고되어 있었다.

하루 두 끼만 먹던 나는

어른들이 챙겨주시는 삼시 세끼를 박꼬박 먹었다.

식간에 먹는 간식도 고구마튀김에 떡까지

고열량 음식들이었다.

땀내는 러닝 대신

슬렁슬렁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

그마저도 연휴 내내 불어왔던 눈보라 소식에

잠깐 걷는 것이 다였다.

밤이면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식탁에는 오색빛깔 야식 꽃도 함께 만발했다.

간만에 만난 동생네와 맥주를 한 캔 두 캔 뜯다 보니

어느새 캔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3Kg.

그것은 나의 몸 여기저기 들러붙어

여간 부대끼는 것이 아니었다.

혹여 튀어나온 곳은 없는지 손으로

몸 여기저기를 찔러보았다.

역시, 역시는 역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약간의 타이트한 바지가

그 튀어나온 것들을 더 부각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지금 이 몸으로 옷정리를 시작하면

내가 가진 바지의 반 정도는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제대로 된 미니멀의 시작라 오히려 좋은 걸까.

몸을 채우고 공간을 비우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대로 두다간 내 몸에 덕지덕지 들어붙어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들이

아예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일부턴 이것들을 쫓아야 한다 생각하니 비장해진다.

아니지, 비장해지면 시작부터 지친다.


그냥 닥치고 헬스장을 가야겠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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