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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Oct 29. 2024

"귤"복당했다

밀감의 시대, coming soon


주말 동안 가족들과 타 지역을 여행하며

예상치 못한 선물을 얻었다.

바로 귤 몇 알.

벌써 귤이 나올 때가 된 건가?

작년 겨울 귤을 박스채 사나르며

이걸 또 얼마 만에 다 먹을까

가늠해 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실컷 먹었다 생각하고 집으로 왔는데

제주도 여행길에서 돌아오신 친정 부모님이

비행기 시간 기다리며

근처에서 귤 따기 체험을 했다며 또 한 아름 안겨주셨다.


이게 웬 떡이냐!




어렸을 적 겨울이 오면

친정아버지 퇴근 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집에 귤이 남았는지 다 떨어졌는지 확인하는 것.

만약 다 떨어졌다면 전화를 거는 것.

"아빠, 귤 한 박스 사 와주세요."


그 말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왔을까.

아버지께 귤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찌 됐건 두 말 않고 전화를 끊은 아버지는

퇴근길에 틀림없이 가장 맛있는 귤 한 박스를

번쩍 들고 오셨다.


입은 "다녀오셨습니까?" 하지만

귤 상자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간신히 아버지를 보려 했는데

이미 귤이 더 반가웠던 것을 들켰는지도 모르겠다.


귤 상자를 베란다에 둘 새도 없이

바로 거실 한가운데에서 언박싱.

가차 없이 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한다.

'난 분명히 밥 먹였어! 고봉밥을 먹었다고!!'

억울한 눈빛을 아버지께 쏘아대는 엄마.

그건 둘 사이의 문제인 걸로.

우리 삼 남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전초밥 접시 마냥 귤껍질을 쌓아 갔다.


 

겹지도 않은지...

이맘때 우리 삼 남매는 모이기만 하면

그때 그 시절 귤 이야기.

하지만 전만큼 못 먹어 슬프다는 이야기도 곁들인다.

예전에는 과일이라면 비타민 섭취라며  먹었지만

요즘은 그놈의 "혈당 스파이크" 때문에

마음 놓고 먹기는 글렀다.

"적당히" 먹어야 한다.

세상에서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

거기다 슬하에 초등 남매가 있으니

요 녀석 먹는 모습 보면

자연히 귤에서 손을 놓게 되어 버린다.


께 귤을 까먹다가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

귤에서 손을 놓으신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굴복, 아니 "귤"복 당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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