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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an 28. 2024

악명 높은 학습지 해지에 성공하다

칭찬과 협박의 중간 그 어디쯤

초등 입학 전,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청했던 학습지.

입학해보니 학교 숙제도 꽤 많았고, 매일 수학 학습지 10장과 국어 학습지 5장을 아이가 해내기엔 힘들었나보다.


거기에 맞벌이인 우리 대신 방과 후 주 양육자인 친정엄마는 아이의 과제 수행에 대한 의무감이 1도 없었다.

집에 오면 학습지는 커녕 샤워도 안 한 아들을 다그친 지 1년. 회사 일이 힘들었던 어떤 날은 아이와 학습지를 앞에두고 실랑이하며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성실병(?)이 있는 난 어떻게든 매일 주어진 과제를 끊내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몹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기로 한 분량을 끝마치지 않으면 아이 전에 내가 먼저 미치는 성격이라 1년 간 학습지를 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한글도 두어 달 만에 떼고, 덧셈도 조금 선행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일단 2016년 생인 아들은 애초에 왜 해야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아이에겐 스트레스이자 엄마가 화내는 원인일뿐이었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 었다. 내 안의 악을 꺼내는 것. 그럼에도 차마 끊지 못하다 남편의 권유로 해지하게 됐다.



학습지 해지를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악질’이라는 둥 절대 끊지 못한다는 등의 괴담이 많다.

심지어 해지 노하우를 제발 알려달라는 글들도 많다.


나 또한 한 달 전에 해지가 불가능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담당 선생님에게 해지하고 싶다고 실제로 말씀드리니,

“한 달치를 이미 발행해 놔서요. 한 달 뒤에나 해지가 가능하세요.”라는 예상했던 딱 그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해지를 2주 앞둔 날, 평소와 수업시간과 달리 팀장이라는 분과 총 두 명의 선생님이 다녀갔다고 했다.

퇴근해서 만난 아이는 선생님이 준 반지 모양의 사탕을 물고, 선생님한테 받은 장난감들을 실컷 자랑했다.


첫 번째 전략 아이 환심 사기였다.


그리곤 며칠 후 다녀갔다는 그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제가 수업에 가서 봤는데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엄청 집중도 하고 잘하더라고요~”

정 반대의 아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는데, 엄청나게 (과장된) 칭찬을 하셨다. 그래도 내가 해지를 고집하자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학습을 중단하시면 나중에는 진짜 하기 힘들어지세요. 이미 아이가 싫어서 해지한 거 기 때문에...$%#$%“

이미 담당 선생님이 한 차례 시전하신, ‘불안감 조성’이 두 번째 전략이었다.


지금 해지하면 이미 잡아놓은 습관이 와르르 무너져 언제든 내가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영구적인 학습 지연과 자신감 저하로 이어진다는 무시무시한 협박.


끝까지 경청하고, “맞아요... 근데 어쩔 수 없죠.”라고 말하니,

당황한 듯 놀라시며, “어머니 어쩔 수 없다고요??”라고 하셨다.


이미 여러 차례 들은 설명이고, “저도 지속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입장이지만 저만 윽박지르려니 아이와 관계도 나빠지고 힘들어서요.”라고 설명했더니,


반색하며 내 말을 끊고 말씀하시길, “윽박이요? 그건 어머니가 너무 잘하시는 거세요. 정말~”이라며,

곧 있을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로 장난감을 살 수 있다고 지난번에 아이한테 말했더니 관심을 보였다고 마지막 아이를 이용한 최후의 설득을 시작하셨다.


안타깝게도 반대의 얘기였다. 팀장 선생님이 다녀간 날, 아이가 한가득 장난감을 들고 선생님이 준거라고 자랑하기에 혹시 마음이 변했나 싶어서,


“이준아, 그럼 선생님 좋아졌으면 더 해볼까?”라고 물으니 아이가 말했다.


“아니? 내가 설마 그러겠냐~ 절대 안 해!”라고.

이 얘기를 전하니 내내 장황하게 말씀하시던 팀장님은, “정말요? 제가 진작 갔어야 하는데...” 하더니,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0.2초 만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엄청난 괴담과는 달리, 조금은 쌀쌀맞고 간명한 해지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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