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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Dec 20. 2023

아들이 학습지를 버렸을 때 아빠와 엄마의 차이

당한 대로 갚게 되더라

8세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학 학습지.

근면성실을 부르짖는(?) 내 덕에 꾸역꾸역 하고는 있다.


늦은 퇴근 후, 아들이 어쩐지 후딱 과제를 마쳤다 했는데 비밀을 알았다.

아빠 귀에만 속삭인 비밀, 중간에 몇 장을 찢어서 책장 위에 숨겨두었단다.


남편이 그걸 나에게 말해주었다.


참고로 나도 내 아들 나이 때 재능수학이라는 걸 했는데,

선생님과 마주 보는 수업에서 선생님 뒷 벽에 9단까지 적힌 구구단 학습표를 붙여놓고, 선생님이 묻는 문제에 천연덕스럽게 대놓고 베끼며 대답하다 바로 걸린 적이 있다.


재능선생님이 바로 엄마에게 제보했고, 나는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그날 이후 내 인생에서 재능수학은 없었다. 다혈질 엄마가 바로 해지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러 내 아들이 학습지를 찢어서 숨기다니.

일단 화가 났다.


아들에게 "거짓말쟁이라서 산타할아버지가 이번주에 선물 안 주겠다. 큰일 났다."로 시작해서 경찰서에 신고한다, 거짓말하다 코가 길어지겠다, 이제 너 싫어졌다 등 치사하지만 콕콕 찌르는 말을 아이랑 주고받다 결국 울게 만들었다.


아들은 아빠 옆에 찰싹 붙어서, "이제부터 엄마 싫고 아빠만 좋아."라고 하자 남편이 말했다.

"아빠는 이준이 믿어. 아빠도 어렸을 때 공부 진짜 안 하고 막 물건도 훔치고 그랬는데 할머니가 우리 아들은 잘할 거야. 믿어. 훌륭한 사람 될 거야. 그랬었어. 그래서 그렇게 됐잖아? 그렇지? 아빠는 이준이가 공부를 못해도 안 해도 사랑하고 믿어."


과장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나의 남편의 엄마, 즉 시어머니는 실제로 그런 분이다.

늘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 아들에게뿐만 아니라 며느리인 나에게도 심지어 타인에게도 그렇다.


그렇게 배우고 자란 남편은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더라.

몰래 코 길어진다고 협박(?)하며 꼬집고, 아이는 또 복수한다고 이불 밑으로 날 꼬집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내가 좀 머쓱해졌다.


그리고 어린 시절 엄마한테 들었던, "넌 왜 거짓말을 하니! 거짓말이 엄마는 제일 싫고 정 떨어져!"라는 감정 분출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아들의 같은 행동에 이렇게 현격이 갈리는 반응이 어린 시절 내가 보고 들을 족적 그대로라니 씁쓸하기도 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무력함도 들었다.


그리고 뒤끝이 긴 나는 제대로 혼내줄 요량에 오늘 아침 아들과 단 둘이 가는 등굣길에서,


"엄마 할 말 있는데. 너 진짜 잘못한 거 없어?"라고 다시 물었으나 이미 아빠말로 기분이 싹 풀린 아들이 대답했다.

"눈 오니까 조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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