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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l 22. 2023

한 때 미워했던(?) 선생님을 향한 고백 편지

첫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께 처음 보내본 메시지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인생 첫 여름방학을 맞았다.


지난 3월을 돌이켜보면 혼돈의 연속이었다.


부족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적나라하게 ‘반에서 우리 아이와 다른 아이 딱 둘’만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통보와 (그런 줄도 모르고) 신나게 신청해 둔 예체능 위주의 방과 후 수업들.

우리 부부는 오로지 아이의 흥미만 생각해서 농구, 컴퓨터, 로봇 제작 등의 수업을 신청하고 뿌듯해하고 있던 중 선생님의 첫 전화가 왔다.


연세도 좀 있으시고, 말을 돌려서 하지 않는 화법의 선생님이셨다. 대부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듣고 있었는데 살짝 흥분하신 선생님은,

“어머니, 이준이는 이렇게 막 굴리시면 안 되는 아이예요.”라고 하셨다.


굴린다는 표현에 마음이 상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첫 아이다 보니 방과 후 한글 보충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못 들어서, 잘 몰라서 그렇게 한 거라고 지금이라도 선생님이 보충 수업을 하신다고 하면 신청했던 수업을 다 취소하고 감사히 따르겠다 “고 대답했지만 선생님도 축 쳐진 내 기분을 감지하신 것 같았다.


“어머니, 저도 워킹맘이잖아요. 그래서 알잖아요. 굴린다는 말에 기분이 상하셨을 수도 있는데, 한글은 금방 되는 영역이니 너무 괘념 친 마세요.”라는 말로 첫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 이후로도 아이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 저는 다른 애가 우리 아들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하면 절대 참지 못할 것 같아요. 학폭을 여셔도 되는 상황이에요.”

오히려 선생님의 직설화법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우리 아이의 태도의 문제도 있었던 것 같아서 잘 가르쳐서 선생님이 제안하신 학폭이나 부모님 대면까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학을 앞둔 시점, 아이는 ‘학교 공부’가 재밌는데 왜 방학을 하냐고 싫다고 한다.

사실 나는 지금껏 뭐든 내가 잘해야만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해 왔는데, ‘실력과 무관하게’(아들 미안) 재미를 느끼는 아들에게서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지막 수업날 선생님께 보낸 메시지.

담임 선생님과의 메세지

사실 방송현장에서 ‘다 자란’ 성인들과의 작업임에도, 화가 치미는 순간이 너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아이 담임 선생님 생각이 종종 났었다.


가끔 전화 통화 때,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고생이 많으십니다.”라고 말을 건네면,

“네, 오늘은 진짜 좀 힘드네요ㅜ 아이들이 말을 너무 안 듣네요.”라는 말씀을 하실 때 더 속 깊은 위로를 건네지 못했던 게 이제 와서 민망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아이의 부족함을 가장 적나라하고 객관적으로 짚어주셨던 아이 인생 최초의 선생님.

아마도 팔을 안으로 굽는 것이기에 아들에 대한 지적에 내 마음은 철렁하고 아팠지만,


결국 선생님 말씀대로 ‘금방 잘하게’ 되었고 더욱 감사한 것은 즐기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피디 포함 모든 직업이 다 위기고 어렵다고 하지만,

방학을 앞둔 학 학기 동안 고군분투하신 전국의 선생님들께 무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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