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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09. 2024

당신이 꾸준함을 지키는 법

슬슬 꾸준한 달리기가 힘겨워지며 핑계를 찾아대며 냅다 주저앉으려던 나는, 세상 속 꾸준함의 대가들의 비결이 도대체 뭔지 궁금해했다. '일단' 하는 행동력이 어찌하여 오는지 그 실체가 아리송하던 차에, 글벗들의 다양한 경험 답글들이 굉장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그냥' 하는 행동력은 말 그대로 이유 없이 '그냥' 실행을 잘하는 성향을 타고 나는 줄 알았다. 무심하게 '그냥 하는 거죠 뭐.'라고 성공의 이유를 말하는 저 높은 고수들의 영역처럼 말이다. 그런데, 글벗들은 그런 류의 자기 계발 고수들의 선문답과는 달랐다. 조금 더 친근하지만, 훨씬 디테일하고 실용적인 깨알 팁이 마구 쏟아졌다. 이건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굉장히 소중해서, 글로 옮겨 보았다.


빨강 님은  '꾸준함'이 과연 좋은 것인지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늘 같은 일을 하는 삶이 과연 옳은가? 그냥 자기가 그게 좋다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아니지 않은가? 오. 신선했다. 어쩌면 나 역시 '꾸준함'이 옳은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괜히 우러러보며 나를 폄하하고 낮추기만 한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주황 님은 운동을 하다 보면 결국 마약 같은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정말 죽을 맛이지만 한번 그 맛을 알아버리면 운동을 저절로 계속하게 된다고 했다. 캬. 나 역시 종국의 먀약을 좀 맛보고 싶은데, 죽을 맛의 터널에서 매번 꺾인다. 그래도 터널의 끝을 지나면 꾸준하기 위할 노력조차 필요 없다니, 선각자의 말을 믿고 일단 더 가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노랑 님은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 때, 5초만 세고 무조건 시작한다고 했다. 와우! 찐 고수의 향이 느껴진다. 말이 5초이지, 5초는 찰나와 다름없는 시간인데 그게 '일단' 하기 위한 하나의 주문과 같이 설정한 다는 게 꽤 현명한 방법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오늘, 5초 센 다음, 요가매트 펴고 집에서 30분 홈트를 했다.)


초록 님은 근육을 지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는 건강을 위해서 필요가 아니고 필수라고 했다. 맞다. 근육 만들어 놓는 것이 노후에 돈 버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알면서도 자꾸 안 하게 되는 게 문제다. 미래의 나. 당장 10년 후 나를 자주 떠올려 보자고 다짐을 했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는 것도 꾸준함의 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파랑 님은 근육통이 오면 뿌듯함이 느껴지고 그래서 음식과 맥주도 즐겁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건 나랑 좀 잘 맞는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나도 이제 달리며 다음 날 다리가 뻐근해지면, 그 느낌을 만끽하며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며 기뻐하기로 했다. 근육통이 기대된다.


남색 님은 운동복을 구매하며 운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장비발 역시 꾸준함의 부스터가 될 수 있겠다. 나는 아직 러닝을 위한 워치가 없는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나 역시 꾸준함이 고갈되려 할 때 워치를 구입해서, 시계 자랑하려고 저절로 달리러 나가는 레벨업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보라 님은 루틴이 깨지면 다른 일이 꼬일 때도 있어서, 어차피 하는 일에 귀찮은 일을 끼워서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고수님의 간증이 등장하셨다. 나 역시 그걸 흉내 내서 글쓰기에 운동을 끼워 넣어서 지금 이러고 있다. 그런데도 쉽지 않고 자꾸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고수님 말대로 인생 꼬이는 건 싫으니깐, 그냥 지금처럼 끼워 팔기로 스리슬쩍 엮어서 쭉 이어가야 겠다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다. 놀랍지 않은가. 살아 숨 쉬는 여러 빛깔의 경험담이 나를 다시 두근대고 설레게 만들었다. 나와 같이, 아니 나보다 더, 꾸준하기 위한 제각기의 노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그동안 살아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난데없이 조금 뭉클해졌다. 다들 같은 고민과 실행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이제 달리는 걸 멈출 이유가 없어졌다. 그냥 이게 인생인 것이었다.  


'꾸준함'이란 누구나 타고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저 유명하고 번쩍거리는 그들만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꾸준함'이란 그냥 우리 모두 매일 집밥 먹는 것처럼,  매일 양치하는 것처럼, 그냥 늘 가까이 있었으며, 어쩔 땐 자주 만났다가 어쩔 때는 또 멀어졌다가 반복하는 그런 친숙한 것이었다.  그래도 '꾸준함'을 다들 잃지 않으려고 각자의 필살기를 쓰는 걸 보면  '꾸준함' 너는 이미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였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았고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 있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은 이렇게 변형해 본다. 꾸준함은 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냥 우리 마음속에 항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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