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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l 15. 2024

내 근육이 후달릴 때  

부상이 남긴 것  

진료를 하다가 갑자기 말이 쓰러졌다. 보정틀(말을 안전하게 진료하기 위해서 말이 이동하지 못하게 넣어두는 쇠로 만든 사각 틀) 안에서 말이 쓰러져 버렸기 때문에, 누워 있는 말을 보정틀 옆으로 좀 옮겨야 한다. 그래야 말이 다시 일어날 때 쇠틀에 부딪쳐서 다치지 않는다. 평균 체중 500kg이 넘는 쓰러진 말을 몇 걸음 옆으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여러 사람이 꼬리나 다리를 잡고선 당길 수밖에 없다. 장정 몇 명이 붙어서 순간적인 힘을 합해서 줄다리기하듯 당겨서 말을 옮겼다. 그때 나는 뭘 하는가? 뭐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머리라도 옆에서 끌어주지만,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나는 남자 장정들보다 피지컬이 어차피 약하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나는 근력 운동을 그동안 가장 많이 해왔다. 내가 동등한 힘은 못 내더라도 최소한 피해는 주면 안 될 것 같았고, 내가 근육이 있어야 덜 다치고, 말 수술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헬스장에서 개인강습이나 단체강습을 주로 받았었다. 근육 쓰는 것을 맛있다고 표현하던데, 나는 그 경지까지 운동이 즐겁지는 않았고, 단지 중량이 조금 늘어난다던지, 인바디에서 근육량이 수치로 조금 늘어났을 때 기분이 좋다는 것이 내 행복의 최대치였다. 나는 내 근육을 사진 찍어 올리거나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없었지만, 내가 힘이 세져서 갑자기 말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할 때 수월하게 느껴지고 싶은 욕구는 있었다.


코로나가 오면서 헬스장보다는 홈트를 하게 되었고, 홈트의 시조새라 불리는 낸시 언니의 유튜브나 스미홈트 등 내가 즐겨 찾는 운동 유튜브를 통해 맨몸 운동으로 팔과 다리의 근육을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엄청 열심히 해서 울뚝불뚝한 근육이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그래도 어디 가서 팔 힘 약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로는 살았다. 어쩌면 그게 내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나는 작년에 부상을 당했다. 과도한 팔 사용이 원인이었다. 당시 말 개복수술이 몇 건이 동시에 있어서 엄청 무거운 내장을 끌어올리고 잡아 끄는 일을 하며, 내 힘보다 훨씬 무리를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거기에 채혈이나 백신을 놓는 일, 주사약을 뽑는 일 등 업무 중에 손을 쓸 일이 그 주간에 유독 많았는데, 그 와중에 골프를 배워보겠다고 매일 새벽에 연습장에 나가서 수십 번 공을 때리며 스윙을 날리다 보니깐 어느 날 문득 팔꿈치 쪽이 너무 아팠다. 좀 참다가 점점 통증이 심해져 머그컵 하나 들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커졌다. 겁이 퍼뜩 났다.


내가 팔을 못쓴다면? 눈앞이 캄캄하다. 어떻게 해서 온 자리인데 기껏 팔 하나로 망칠 수는 없었다. 당장 골프를 그만뒀다. 다 치료하고 온다고 했는데, 지금도 가지 않으며 1년 치 돈을 홀딱 날리며 나는 골프 입문도 전에 조기은퇴 해버렸다. 제일 잘한다는 정형외과 세 군데 정도를 돌았다. 손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골프 엘보가 왔다며 충격파 치료를 권했다. 얼마가 들든, 몇 회의 치료가 필요하든 내 모든 스케줄을 치료에 최우선으로 삼았다. 선생님은 모든 운동을 하지 말고, 심지어 집안일도 하지 말라고 했다. 힘쓰는 것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쓰는 행위조차 무리가 간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았다. 알고 보니 테니스 엘보, 골프 엘보는 정말 흔한 질환이었고 왕년에 한번 다 앓아봤다는 사람이 마구 등장했다. 각자만의 치료 비법을 나에게 풀었다. 다양했지만 통일된 의견은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부상 진단의 시점으로 나는 근력운동의 끈을 완전히 놓았다. 쉬는 것이 가장 유일한 치료라는데 이미 일할 때 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운동은 더 이상 얹을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나니 팔 근육이 눈에 띄게 얇아졌다. 난 원래 내 전완근육이 잘 보이는 줄 알았는데, 막상 운동을 쉬니 근육의 모양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게 아니고, 그동안 끈질기게 홈트로 유지해 왔던 것이었다. 좀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계속 쉬었다. 점점 팔 근육도 흐물 해지고 다리도 물렁해지고 배에 지방도 늘면서 현재의 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말 진료를 할 때 몸을 쓰는 데 있어서 많이 후달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행인 건 이제는 팔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의사 말을 너무 잘 들어서 너무 많이 쉬었다는 게 죄라면 죄다. 팔 근육뿐만 아니라 온몸의 많은 근육을 잃은 나는, 마치 재산을 잃은 사람처럼 조금 위축되어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도, 팔에는 무리가 안 가기 때문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요즘은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오늘처럼.) 이런 날에 나는 요즘 예전의 홈트 원조들의 유튜브를 보며 집에서 매트를 깔고 몸을 조금씩 놀려 본다.


예전과 다르게 플랭크 자세를 조금만 유지해도 팔이 후들거리며 헉헉댄다. 이래 저래 따라오지 않아서 더 하기 싫은 내 몸을 어르고 달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30분 달리기 안 한 날은 30분 스트레칭이라도 하자고 생각하며 다시 나의 온라인 선생님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그들은 내가 쉬는 동안에도 여전히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 단단히 그 자리를 지켜주심에 감사드리며, 이제 나도 30분 글썼으니, 30분은 그녀들을 흠모하며 따라 해 봐야겠다. 돌고 돌아 다시 근력 운동으로 슬슬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어느새 달리기가 붙으니, 부상이 럭키비키가 되었다고 여기기로 해본다. 무언가 훨씬 더 찬란해질 내 운동 인생 시즌 2가 올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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