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 초등학생 아이들은 집에서 하루종일 북적거리다가 내가 퇴근하자마자 앞다투어 달려와서 발언권을 가지려고 싸운다. 특히 상대의 약점이 잡힐 때마다 나를 애타게 찾으며 재빠른 보고를 한다.
"엄마, 오빠가 또 나 놀렸어."
"엄마, 오빠가 이거 안하고 도망갔어."
또 아이들은 자기가 잘한 게 있으면 앞다투어 뻥튀기처럼 나에게 보고한다.
"엄마, 나 혼자 머리 감았어."
"엄마, 나 벌써 숙제 다했어."
자기가 잘한 것은 온 동네방네 자랑해서 인정받고 싶고, 남이 못한 것은 얼른 흉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드러나는 일이 있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있다. 일을 했는데 인정해주는 이가 없다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한동안 즐겨보았다. 사람 병원에서의 에피소드가 말 동물병원에의 공감 포인트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응급의학과와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들에 대한 내용이다. 죽을뻔한 상황에서 살아난 환자로서는, 당연히 나를 수술해준 주치의 선생님의 두손을 잡고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자가 입원부터 퇴원까지 그 모든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하나의 팀플레이로서 이루어진다.
드라마 속 응급의학과 펠로우 선생님은 만신창이가 된 응급 환자 응급실에서 살려내느라 사력을 다했다. 끊어져가는 생의 끝을 거슬러서 살려주고, 그 환자는 바로 수술과로 넘어가서 수술을 받았다. 환자는 수술 주치의에게 온갖 감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슬프게 쳐다본다. 그 안쓰러운 눈빛이 너무나도 뼈아프게 이해가 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도 일했는데, 나도 누구보다 환자의 안위가 궁금한데, 결국 나는 밥상만 차리다 끝나고 환자는 나의 존재도 모르겠지.. 하며 우울해하는 펠로우의 마음이 속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고생 고생하는 보이지 않는 땀방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따스히 비쳐준 이번 화를 만든 작가 분께 너무나 고맙다.
전담 수술교수님은 수술 직후 수술경과를 설명해주면서 보호자에게 항상 고맙다고 인사를 받지만, 그 인사는 사실 대표자로서 받는 인사일 뿐이다. 신생아 중환자실도 마찬가지다. 전담 교수는 24시간 중에서 5분만 환자를 보고 나머지 시간은 전담 간호사가 신생아를 안고 케어하느라 고생한다고 한다. 아기의 부모는 수술해준 전담 교수님만 쳐다보지만, 그 아기를 24시간 안고 먹이고 체크하는 간호사 역시 아기만 쳐다본다.
말 동물병원 또한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수술은 그저 거대한 퍼즐의 작은 조각일 뿐, 체중을 재고 카테터를 달며 상태를 체크하는 과정, 진단을 위한 모든 보조 과정들, 수술 후 술후 관리의 디테일과 관리의 수고스러움, 마취 전후의 과정과 평가, 응급 상황에의 초반 대처, 고객에 대한 응대, 수술전후의 모든 기구 관리 유지, 서로 간의 팀워크 등등. 보이지 않는 그 기운과 공기들이 모여 결승골을 만들어간다. 그 중 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그중 뭐 하나라도 어긋나면 결국 골은 들어가지 않는다. 공격수의 슈팅과 골이 들어가는 장면이 리플레이 화면에서는 가장 많이 잡히겠지만, 사실 우리는 다 안다. 그 골을 넣기 위해 미드필더, 수비수, 감독님 등등 그 모두가 이뤄낸 결과라는 걸.
인간은 혼자가 아니듯이, 병원 역시 마치 공장처럼 모든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제대로 된 제품이 탄생한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걸 자꾸 망각한다. 고마움은 모두가 이룬 결과물이다. 분명히 내가 예전에 벤치에 앉아있었던 선수 시절에는, 나의 노력도 보호자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못내 억울할 때도 많았는데 그 시절을 망각하는 내 자신이 못난 것 같다. 대표로 감사 인사를 받았으면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사무적으로 이야기하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에 대한 감정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장님 정말 멋졌어요."
"주임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했을 것 같아요."
글로 먼저 연습해본다. 그리고 입으로 붙여야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마음만 백날 가지고 있어 봤자 모른다. 결국 성의란 서로 간의 고마운 순간에 대한 진심 어린 표현이다. 이모티콘처럼 너무 쉬운 가면 뒤에 숨는 소극성 말고, 알콜 앞에서만 용감해지는 꼰대라떼 말고, 맨정신으로 바로, 말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아날로그로 직진해서 보내는 것이 예의이고 이 시절을 충실히 지켜내며 사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