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주의 마지막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을 지나 오랜만에 시네마로드(c도로)를 걷는다.
1990 년대만 해도 원주의 다섯 개의 단관극장 중의 네 개가 c도로에 있었다고 한다 .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c도로를 시네마 로드로 부르기도 했다는데 이제 극장은 모두 사라지고 낡고 외로운 아카데미 극장만이 이 길에 남았다.
봄을 파는 상점들 ....
이제는 더 이상 시네마 로드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몇 발짝 걸을 때마다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종묘사 간판들....
봄을 파는 상점이라고 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이 거리의 종묘사들은 지금 그 어떤 계절보다도 화려하고 바쁜 4월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
길을 걷는 내내 종묘 사이 앞에 진열된 엄청난 양의 꽃모종과 다양한 농작물의 모종 들이 인도를 모두 차지해 버려서 불편할 법도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
오히려 1년에 딱 한 번 봄에 만날 수 있는 당연하고도 특별한 광경일 것이다 .
초록의 거리에서 꽃들은 노래 하고 있다 .
화려하지만 연약하고 또 미치도록 설레이게 아름다운 종묘사 앞 꽃모종 들은 그렇게 생생한 4월의 날들 속에서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며 곧 곱디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거리에서 새까만 비닐봉지에 담겨진 여린 싹들이 사람들의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
팔려나간 모종 들처럼 쌓여가는 건 그만큼의 풍요로운 기 대일 지도,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내는 요즘 불편한데 이미 익숙해져 버린 마스크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생기 있는 걸 음만으로도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4월의 c도로 ....
봄을 파는 상점들 ....
그리고 그 앞의 버스 승강장....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 듯 졸고 있는 할머니의 새까만 비닐봉지에는 초록의 봄이 담겨져 있다.
그렇게 무작정 사진 몇 장 건질 수 있는 거리를 찾아서 걸었던 길에서 만난 풍경은 이렇게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하고 여름인 양 따갑게 내리쬐는 모처럼의 햇살에 여린 싹들이 다칠까 부지런히 물을 주며 온종일 쉴 새 없이 모종 들을 돌보는 아주머니의 손끝에서도 봄은 자라난다. 사람들에게 팔려나간 꽃들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정원이 되어주고 파릇한 노종들이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하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겠지 되겠지.
새 빨간 보자기 위의 바구니에 담겨있는 미나리의 줄기 끝에서 자주빛과 연두빛으로 어우러진 봄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고 아직은 쌀쌀한 듯 짙은 색 패딩을 입었지만 할머니의 몸빼 바지에는 이미 봄이 내려앉았다.
다가올 여름 뒷마당에서 알알이 매달려 익어갈 딸기의 수확을 내심 바라며 나는 딸기모종을 한아름 사들고 봄을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