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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y 02. 2022

적당히 아는 선에서 멈추면 보이지 않는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2019)

고백독서클럽 하면서 처음으로 문학이 아닌 논픽션을 도전해보았습니다. 비록 온라인 인증으로 서로의 독서생활을 나누는 클럽이지만 3월까지 해보니까 완독하는 힘이 생기더라구요. 더욱이 계속 문학만 읽다보니, 논픽션이 몹시 읽고 싶어졌어요.


 자연과학의 역사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했던 1859년을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이책을 다 읽고 나니 무조건 끝까지 완독해야 하는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의 기원> 1장과 2장에서 새로울 것 다며 이것저것 두서없이 나오는 자료들에 지루해지면서 포기하더라구요.


적당히 알고 있는 사실들, 굳이 자세하게 알아야 할까?

책을 읽다보면 이런 물음들이 절로 피어납니다.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자연선택이론이지만 당시에 창조과학이 일반적인 인식이라 다윈의 이런 책은 금기에 대한 도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의 시대감각으로 읽어야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인 19세기 중반은 사육을 통해 특이하게 생긴 개나 비둘기를 만들어 내는 게 대 유행이었습니다.

비둘기종류가 이렇게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여러종이 있는지 처음알았네요.


짧은 시간안에 인간이 육종으로 이렇게 여러가지 비둘기를 만들 수 있었다면 자연이 가진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동안 한 두개의 종은 수많은 종으로 변이하며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다윈만은 아니었을 거에요. 오로지 다윈만이 비둘기 사육장을 만들어 실험하고 6년 여의 비글호 항해와 여러 학자들의 연구자료를 수집해 자신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낸 것이겠지요.


1장과 2장이 조금 두서없이 스토리없이 이런저런 견해들을 내보이는데 그렇게 풀어낸 것들이 3장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선택에 대해 독자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했던 말을 자주 반복하기도 하고 장이 끝날 때마다 결론과 요약을 하면서 한번 더 정리해주니 따라가기가 수월했네요. 3장의 자연안에서 생물들의 생존투쟁 를 읽다보면 그 치열함과 오랜기간에 걸쳐 살아남은 종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며 새삼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암수 한몸인 생물조차도 별도교배를 통해 거듭 진화하려고 애쓰며 좁고 격리된 지역안에서 희귀종이 나올 순 있지만 개방되는 순간 멸절의 길을 가는 생존법칙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줍니다.


아주 오랫동안 느린 속도로 많은 투쟁을 거쳐 지금까지 내 주변에 살아남아 있는 생물들의 대단함을 느낍니다. 어쩌면 인간이 이득을 따지고 합리적인 것을 따지려고 하는 것도 생존본능중에 하나겠네요. 그렇게 모든 생물안에 내재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이라면 굳이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생존경쟁을 시켜야 하는 걸까? 인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자신의 앞날을 위해 변화를 시도할 이 생명체들인데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어른들이 나서서 투쟁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더욱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체들이 있는 곳이 가장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고 생존력이 강해진다고 하는데 이전세대가 생각하는 성공루트, 한길로만 내몰고 있으니까요.


9장에 이르러 비글호 항해로 정립하게 된 지질학적 불완전함과 지리적으로 생물의 종이 고루하게 분포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창조설을 계속해서 반박합니다. 바다위에 각기 떨어져 있는 섬을 탐사하면서 식물종은 씨앗 이주의 용이함 때문에 각 대양도가 비슷한 식물군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동물 종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죠. 신이 독립적으로 개체를 창조했다면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인 이 섬에는 왜 없고 다른 섬에는 그 종이 있는가?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왼쪽 말년기의 찰스 다윈, 오른쪽 비글호 함장 로버트 피츠로이 _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다윈의 탐사 항해를 함께한 비글호 함장이었던 로버트 피츠로이는(1805-1865)조차도 다윈의 저서가 이런 결론에 도달할 거라는 걸 짐작하지 못하고 그를 도왔습니요. 이 책 출간 직후 그는 세간의 비난과 고통에 시달렸다고 해요. 결국 출간 6년뒤에 권총자살을 하는데요, 연구를 깊히 도운 함장조차도 뿌리깊은 인식을 바꾸지 못할 정도였으니 당시에 창조이론을 반박하던 다윈의 저서가 얼마나 큰 이슈였는지, 인간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바뀌기 힘든지도 눈에 선합니다.


13장에 와서 분류학, 형태학, 발생학, 흔적기관에 대한 설명으로 앞에서 읽은 내용이 총 정리가 되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현재 종들의 원래집단과 변종집단이 하나도 멸절되지 않고 아직도 중간고리까지 고스란히 살아있다고 했을 때를 상상해보라고 다윈이 그러네요. 그랬을 때 그 자손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공통의 형질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분류학의 기본이 될 것이며 형태학과 발생학에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거라고 예견합니다.

특히 예전에는 있었지만 변이되어 사라진 부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생물들이 아직도 있는데 성체가 되기 전인 유생 단계에 있을때 그 흔적기관을 더 잘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꼬리뼈 흔적이나 새끼 고래에게만 있다 성체가 사라지는 포유류의 이빨뼈도 그 예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 14장(요약 및 결론)에 가서 동물의 조상이 한 가지로 모이게 되고 하나의 원형에서 유래되지 않았겠냐고 결론을 자연스럽게 유출해냅니다. 소름 쫙 돋았습니다. 관련용어들이 조금 어렵거나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코 앞부분이 헛되지 않았네요.


아무런 놀라움없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박쥐가 포유류인게 별로 놀랍지 않았는데 이제야 알에서 깨고 나온 느낌입니다. 어쩌면 어릴때와 어른이 됐을 때 모습이 완전히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서 우리는 이미 멸절되어 화석으로도 남아있지 않은 중간고리, 변이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꼬리 달린 아기가 태어났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이나 아가미가 있는 인간으로 진화를 성공시킨 <고요의 바다>드라마 속 장면들도 새삼스럽게 와닿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새롭게 보이네요.


(p.645) 마치 미개인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인 양 한 척의 배를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가 유기체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면, 모든 자연의 산물들을 일종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면, 모든 복잡한 구조와 본능을 하나하나가 다 그 소유자에게 쓸모 있는 수많은 장치에 합산(중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가 각각의 유기체들을 볼 때 박물학 연구는 얼마나 더 흥미로워지겠는가!


적당히 아는 선에서 멈췄던 제 태도가 이 책을 읽으면서 결과보다 모든 생명의 과정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질문하지 못하는 주입식교육으로 호기심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체가 되지 못했던 제 공부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매우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깊게 알기보다 얕고 대충 적당히 아는 선에서 멈추지요.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법칙으로 돌아가는 지 알기 위해서는 기원을 찾아가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종의 기원> 앞장에 쓰인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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