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가다] : 9월,
가을의 학교

열두 번째 이야기

by 그린

입학식 날과 비슷하게, 그러나 보다 친근하게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날이 되면, 학교는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다시 입학식 날처럼 시끌벅적하고 붐비는 장소로 변합니다. 사방에 온갖 낙서가 그려진 택배 박스가 놓이고, 캐리어를 끄는 드드득 소리가 학교를 가득 메우는군요. 3월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학생들이 어색하게 쭈뼛쭈뼛 학교로 들어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오랜 시간 비웠던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마냥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도착해 서로를 만나면 학생들은 바로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사이처럼 익숙하고 친근하게 서로를 맞이하고, 새로 배정된 자신의 방에 짐을 풀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맞이하는 가을의 시작입니다.



가을의 학교

새로운 반 년에 접어들고, 다시금 시간표를 구성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2학기 개학 후에는 방과후학교, 토요인문학, 스포츠클럽, 기타 동아리 등 많은 강좌와 부서를 새로이 정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보통 1차 방과후학교는 개설 강좌에 큰 변동이 있는 편이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는 어떤 강좌가 열리는지 살펴보고 신중하게 수강할 강좌를 선택해야 합니다. 토요인문학 수업도 마찬가지로 일부 강좌 구성이 바뀌니 개설 강좌 목록을 잘 살펴보아야겠죠? 토요인문학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이전에 수강한 인문학 강좌를 연속해서 듣기보다는 새로운 수업을 선택하여 듣는 편이기 때문에 언제나 수업 신청 열기가 뜨거운 편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원하는 수업을 재빨리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수업 도중 간식을 제공하는 인문학 강좌의 경우 타 강좌에 비해 인기가 훨씬 높다는 것은 암묵적인 비밀이죠. 반면 예체능 계열의 2차 방과후학교는 웬만해서 개설 강좌가 잘 변하지 않는 편이며, 학생들도 한 가지 악기를 줄곧 배우기 위해 이전에 수강하던 강의를 듣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방과후학교와 토요인문학, 스포츠클럽을 모두 정했으니 이제 수업을 듣는 일만 남았겠군요.

그런데 가을의 학교에서 중요한 선택이 아직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청소구역 배정'입니다.


낙엽을 줍고, 콩을 털고, 톱질을 해요

학교의 청소구역은 실내 청소구역과 야외 청소구역으로 나뉘는데, 2학기로 접어들어 가을이 되면 야외 청소구역에 상당한 변화가 생깁니다. 어째서일까요?

우리의 교정은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가치관에 맞게 온갖 꽃과 나무, 풀이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는 곧 학교를 빙 둘러싸고 심어진 나무들이 조만간 엄청난 양의 낙엽을 떨어뜨릴 예정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1학기 때는 단순히 잡초를 뽑고 빗자루로 길을 쓸기만 하면 되었던 야외 청소 담당은, 2학기가 되면 학교 곳곳의 낙엽을 책임지고 치워야 하는 전담반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무렵 청소 시간에 운동장을 내다보면 한쪽에는 큰 싸리빗자루를 들고 있는 학생들이 우르르 서 있고 그 건너편에는 다른 학생들이 자기 키의 절반이 넘는 커다란 마대를 들고 낙엽을 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단 낙엽을 쓸고 치우는 것뿐만 아니라, 가을에 야외 청소 담당을 맡는 학생들은 다른 중요한 일들도 도맡아야 합니다. 학교 소유의 밭을 관리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잠깐만, 학교에 밭이라고요?

오리엔테이션 때 스치듯 지나치긴 했지만, 가을이 되기 전까지는 사실 학교 소유의 밭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활을 스스로 꾸려 가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학교는 그 모토에 부합하게 식자재 중 일부까지도 가능하면 직접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학교 소유의 밭에서 콩 등의 작물을 소규모로 길러내고 있습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 논길을 조금 걸어가다 보면 학교의 밭에 다다를 수 있죠. 가을에 접어들면 야외 청소구역 담당들은 이 밭을 잘 관리하고, 수확 철이 되면 수확을 돕고, 수확이 모두 완료되면 수확한 콩을 터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밭을 관리하는 날에는 각자 장갑과 호미를 챙겨 논길을 따라 학교 밭으로 향합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밀레의 그림처럼, 이삭 대신 바닥에 떨어진 마른 이파리와 잡초들을 주워 정리하면 됩니다. 수확 철이 되면 장갑과 호미를 챙겨 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은 동일하지만, 선생님들의 시범을 보며 잘 자란 콩들의 수확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이전 작업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확 이후에는 학교의 운동장과 야외 데크에 일렬로 앉아 막대기로 콩을 마구 쳐서 알맹이를 떼는 '콩 털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콩을 터는 소리는 실내 청소를 하던 학생들까지 모조리 창가로 나와 콩 터는 장면을 구경하게 만들 만큼 주의를 끌곤 합니다. 콩 털기 작업까지 모두 끝나면, 이제야 야외 청소 담당이 드디어 숨 돌릴 틈이 나지 않겠냐고요? 글쎄요, 그러다 보면 눈 깜짝할 새 겨울이 찾아와 야외 청소 담당이 더욱 강인해져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눈이 내리면 학교를 잔뜩 뒤덮은 눈을 쓸어야 하기 때문이죠.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야외 활동을 하는 수업도 많아집니다. 미술 수업 도중 대지미술의 표현을 위해 바깥으로 나가 흙 위에 물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고, 공예실 앞의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면 건축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열심히 줄자로 목재의 길이를 재고 톱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의자나 그네 중 일부는 학교 곳곳에 놓여 오래도록 학생들의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야외 활동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끈질기게 선생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한 학급 전체가 바깥으로 나가 햇살을 받으며 수업을 듣는 때도 있습니다.


바자회

가을에는 큰 바자회가 열립니다. 학생들에게 미리 기증받은 물품을 가지고 학교 곳곳에 좌판을 벌여 놓으면 학생들이 근처를 오가며 원하는 물품을 구매하곤 합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 학교에서는 신청자를 받아 인근의 지역 주민들에게 연탄을 배달하는 연탄봉사를 진행하는데, 가을 바자회는 바로 얼마 후에 있을 이 연탄봉사를 위한 기금 마련에 가장 중심이 되는 행사입니다. 때문에 학생회에서는 바자회로 수익을 마련하기 위해 세심히 신경을 쓰게 되죠. 이런 좋은 취지에 학생들은 모두 공감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와 별개로 학생들의 안목은 높기 때문에 판매를 담당하는 학생회 임원들은 콧대 높은 고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로 그 해의 학생회 임원 중 '아, 얘 입담 하나는 정말 인정해 줘야 한다'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대표로 나서고, 이따금씩 학생회가 아님에도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학생이 전문 판매원으로 초빙되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살아가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바자회에 나온 물품 중에 '이건 누구의 물건이다'를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모두가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도 특정한 물건의 주인을 쉽게 짐작하기도 합니다. 기증 물품에 익명성은 존재할 수가 없는 셈이죠.


학생회 행사

이 즈음 학생회에서 전교생이 함께 참여하는 게임 및 경기 형식의 행사를 주최하기도 합니다. 온라인 게임 대회를 비롯한 소규모 행사는 매 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편이지만, 몇몇 대규모 행사는 당해 학생회 임원들의 성향에 달려 있기도 하죠. 행동파 임원들이 득세할 시기에는 전교생이 기숙사 로비에 모여 댄스 파티를 벌이고 신문지 위에 올라가기 게임이나 닭싸움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등 역동적인 행사가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한편 지성파 임원들이 득세하는 시기라면 스피드퀴즈, 마피아 게임 등으로 이루어진 행사가 개최되곤 합니다.

올해 학생회 임원들은 직접 몸으로 뛰되 머리도 동시에 써야 하는 중도파라고 하네요. 중도파 학생회에서 기획한 행사는 활동적인 게임과 정적인 게임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머리를 쓰는 추격 게임이죠. 전교생을 세 팀으로 나누어, 각 팀이 자신을 목표로 하는 팀으로부터 도망치는 동시에 자신이 목표로 하는 팀을 잡는 경기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애용되는 물품 중 하나인 확성기가 산악등반 이후 오랜만에 다시 빛을 보는 시간입니다.

'미션 달리기'도 학생회에서 개최하는 많은 행사의 종류 중 하나입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순서대로 이어달리기를 하되, 달리기 전에 미션 용지를 하나씩 뽑고 해당 미션을 수행해야만 결승선에 들어선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경기입니다. 미션 용지에 적힌 내용의 대부분은 '누구누구와 함께 달려라'라는 형태를 띤 것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으레 미션 때문에 선생님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학생들에게 낚아채여 함께 결승선으로 달리는 전교회장의 모습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는 선선한 가을의 즐길거리 중 하나입니다. 한 해에 유독 좋은 호응을 받아낸 행사는, 다음 해의 다음 학생회들에 의해 줄곧 반복되고 새로운 컨텐츠가 더해지며 전통 아닌 전통으로 자리잡기도 합니다.






가을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행사를 즐기다 보면, 본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학교를 뛰쳐나가야 할' 시기가 찾아옵니다. 2학기에 있을 가장 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문체험학습이 기다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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