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가다] : 12월, 문화축제

열여섯 번째 이야기

by 그린

연말을 맞이하는 방법

일 년의 마지막 시험인 4차 고사가 끝나면, 그때부터 학교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로 바뀝니다. 2차고사가 끝나고 여름을 맞이하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붕 뜬 공기로 탈바꿈하게 되죠. 학교에 발목 언저리까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때가 오면 정규 수업 시간표가 무의미해지고, 선생님들의 학급 운영도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그럼 이 시기에는 대체 무엇을 하게 되는 걸까요? 실제로 이때 몇몇 1학년 학생들은 선생님께 이렇게 묻곤 합니다. "저희 이제부터 뭐 해요?"

그럼 "참, 너희는 아직 축제를 한 번도 안 해 봤구나!" 하는 웃음기 섞인 답변이 돌아올 것입니다. 연말의 꽃, 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정말 자유로운 하루하루

4차고사가 끝나고 일 년의 성적 산출이 모두 완료되면, 학생들은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엄청난 수준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일상'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시간을 재미있고 알차게 보내고 싶은 학생들은 학급 단위로 무언가를 기획하기도 하며, 그게 아니라면 각자 밖으로 나가 눈을 맞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교실에서 영화를 틀어 놓고 감상하고,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는 등 자유롭게 여가를 즐깁니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는 학급의 경우에는 대체로 추진력 좋은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서 종국에 큰 규모의 활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섭외력을 발휘하여 선생님들을 끼워서 '마피아 게임'을 하는 학급, 보드게임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학급, 선생님과 반 전체가 함께 도시 중심부로 나가 문화생활을 즐기고 돌아오는 스케일 큰 외출을 준비하는 학급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추억을 쌓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꼭 학급 단위가 아니더라도 노는 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자신이 있는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여가를 즐기곤 합니다. 이를테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가 전통 놀이를 연이어 한다거나, 기숙사 로비에 모여 각종 경기판을 벌이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여유를 즐기곤 하는 것이죠. 바깥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지만 학교 안은 활기로 가득해지는 시기입니다.



일 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화축제

올해의 공식적인 마지막 학교 일정은 바로 문화축제입니다. 밤늦도록 문화축제를 진행하고, 다음날 오전에 겨울방학식을 치른 뒤 각자 학교를 떠나는 것이죠. 문화축제 당일이 올해의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문화축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주로 2차 방과후학교의 각 부서들입니다. 합창, 기타, 가야금, 해금, 클라리넷, 현악부, 재즈댄스, 사물놀이 등을 비롯한 학교의 모든 방과후학교 팀이 문화축제를 위해 연습에 매진합니다.


공연 연습과 리허설

연말 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연습 시간은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정이겠죠? 학생들끼리 주로 만끽하던 길거리 공연 등과 달리 문화축제는 학생들,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인근 지역 주민 분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 큰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기해야 합니다. 공연이 있기 이전 학교에서는 사전 심사를 열어 이 절차를 통과한 팀에게 무대에 오를 자격을 부여하는데, 여러 선생님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 사전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각 방과후학교 부서는 연습에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정규 방과후학교 수업일이 아님에도 학교를 방문하셔서 연습을 감독해 주시는 강사님들까지 존재할 정도입니다. 이 연습 기간에 눈 내린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악기 연주 소리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올 것입니다.

공연 심사 당일에는 서로 다른 방과후학교 팀의 리허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평소 다른 방과후학교 부서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저녁 시간에 학교를 거닐다 방과후학교 강좌가 진행되고 있는 교실 앞을 지날 때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 심사는 다른 부서의 연주를 구경할 수 있는 최초의 시간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물론 이때는 아직 연습이 완전히 되지 않은 부서도 많은 탓에 군데군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연주를 감상하는 데 그쳐야 합니다. 사전 심사에서 각 부서가 보여주는 연주는 다소 정신없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다른 부서를 비웃지 않습니다. 모두가 '우당탕탕' 이라는 수식어와 꼭 맞는 자기 부서의 연주를 떠올리며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전 심사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각 부서는 다시금 연습에 매진하게 됩니다.


공연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면 리허설을 진행합니다. 방과후학교 부서별로 모여 공연 순서를 외우고, 정해진 시간에 대기실로 향했다가 신호에 맞추어 무대로 나가는 동선을 연습해야 합니다. 리허설을 하는 팀이 무대에 올라 직접 위치를 조정하고 공연 초반 부분을 시연할 때, 다른 학생들은 관객석에 드러누워 한가로이 빈둥거리다가 친구가 무대에 오르면 호응을 해 주곤 합니다. 리허설까지 모두 마치면 정말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공연 당일

공연 당일 아침이 되면 모두가 마지막 연습을 기하고 공연 준비를 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집니다. 축제가 진행될 강당을 미리 청소하고, 의자를 나르고, 학부모님들의 방문을 위해 기숙사의 물품을 정리해야 하죠. 이후 모든 부서가 각자 공연을 위한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 의상을 갖춰 입기 시작하는데, 이때 학교를 돌아다니면 마치 예술의 전당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복장을 한 현악부, 화려한 의상을 겉옷 안에 감춘 재즈댄스부, 한복을 차려입은 가야금부 등 다양한 부서의 의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공연은 저녁 무렵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에, 각자 의상을 갖추고 악기 상태를 점검하는 등 대략적인 준비를 마치면 비교적 여유로워져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 학교로 수많은 사람과 차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이따금씩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뛰어가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곳으로 가면 작년 내지는 재작년에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를 방문한 모습을 볼 수 있곤 합니다. 학교에 일찍 방문한 학부모님들과 졸업생들은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미술부가 미리 준비한 전시를 감상하며 공연 시작을 기다립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식당을 방문하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식당 안에 빼곡히 들어차 저마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연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학생들은 굉장히 분주해집니다. 저마다 대기실에서 악기를 들고 기다리며, 슬며시 나가 동선을 체크하기도 합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강당의 의자들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면 문화축제 시작 시간이 초를 다툴 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내의 모든 불이 꺼졌네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일순간 사회자 테이블 쪽에 환한 조명이 켜지면 비로소 문화축제의 막이 열린 것입니다. 사회자 두 명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리 준비한 진행 멘트를 읊으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하던 학생들이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공연의 시작은 주로 사물놀이부가 장식하게 됩니다. 사물놀이패 의상을 갖춘 학생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무대를 열면 모두가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박수를 칩니다. 흥겨운 가락으로 사물놀이부가 첫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양한 부서들이 뒤를 이어 차례로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열심히 연습한 선율을 모두에게 선보이는 현악부, 한복을 입고 장구 장단에 맞추어 연주하는 가야금부 등 많은 부서가 정해진 순서대로 공연을 펼칩니다. 자기 순서가 끝나고 관객석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이 가장 집중하는 순간은 바로 재즈댄스부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입니다. 매번 파격적인 음악과 안무를 선보이는 재즈댄스부의 공연은 학생들이 가장 큰 목소리로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무대입니다.

1부와 2부로 나뉜 긴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전교생의 합창입니다. 모두가 무대에 올라 미리 연습한 합창곡을 부르면, 마침내 문화축제가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공연이 끝나면 모두가 바삐 장내를 정리하고 악기를 도로 가져다 놓습니다. 무대를 감독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 주신 방과후학교 강사 선생님과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뒷정리를 끝내면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가, 올해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지새웁니다.



겨울방학

문화축제 다음날 아침이 밝아 오면, 전교생이 모두 강당에 모여 겨울방학식을 진행하게 됩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화려한 분장과 의상 때문에 못 알아볼 만큼 변했던 친구들이 다시 평소의 맹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겨울방학식에서는 여름방학 때와 비슷하게 학생회에서 만든 영상을 보거나 서로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지며 한 학기를 정산하고, 시상식을 진행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짧은 연설까지 모두 끝나면 비로소 한 해가 마무리된 것입니다. 모두가 미리 챙겨 둔 짐을 바리바리 들고 눈이 내린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면, 학교는 다시 길고 고요한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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