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인류 멸망... <지구로부터의 카운트다운>_04
현종은 늘 대담한 척 자신을 꾸몄지만, 알고 보면 소심한 남자였다.
어릴 때는 친구 집 초인종을 누르지 못해 늘 친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인류멸망의 날이 오자, 현종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심하게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종은 가장 친한 친구 민수에게 마음에만 담아둔, 지금까지 망설였던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민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민수에게 조용하게 속삭였다.
“민수야, 나 꼭 할 말이 있다.”
“그래, 나도 할 말이 있다, 친구. 너부터 해 봐.”
민수는 인류멸망을 하루 앞두고 전화가 온 친구에게 감격했다.
“작년 7월 8일에 파리빠게뜨 앞에서 빌려준 3만원 갚아라.”
현종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민수가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3만원 갚아라.”
현종은 또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 계좌 불러.”
민수가 대답했다.
현종은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이런 용기를 내게 해준 인류멸망이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했다.
<지구로부터의 카운트다운> 슬프고 비장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86,40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