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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덕 Jun 11. 2024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UPI)
한국어교육학과

나는 2015년 9월 1일부로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UPI)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2014년 말경 나는 잘 아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반둥에 있는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과를 개설하려고 하는데 와서 도와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리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대학교에서의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외국 대학에 지원할 것인가 생각이 많았다. 아내는 84세의 노모를 모시고 다른 외국으로 가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인도네시아 교육대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를 찾아가서 디디 수끼야디 어문학부 학장(현재 부총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고 싶으니 도와줄 수 있냐고 했다. 내가 기꺼이 도와드리겠다고 했더니 보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일단 재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교류재단(KF), 그리고 한국국제협력단(LOICA) 등에 도움을 요청해 보자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라 한국에서도 지원해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학장님과 함께 재인도네시아 한국 대사와 한국국제협력단 단장을 직접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도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객원교수 1명, 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한국어 전공 단원 1명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는 나에게 객원교수로 파견되고 싶으면 선발 시험에 다시 응시하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6월경 시험에 응시하였다. 선발된 후에는 7월에 반둥으로 이사했다. 한국어교육학과에서는 한국인 강사 3명을 현지 채용했다. 이때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는 아내도 강사로 채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인도네시아인 교수 1명(학과장)과 한국인 교수 5명이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커리큘럼을 만들고 수업 계획도 하였다.

그런데 8월 초가 되어도 학과 설립은 공식화되지 않았다. 8월 5일 총장 선거가 끝나야 가능하다고 했다. 총장 후보 중 한 분은 한국어교육학과 개설을 찬성하고 있지만, 다른 한 분은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9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데 학과 설립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하니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찬성하는 분이 총장으로 선출되어 한국어교육학과 개설이 정식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한국어교육학과에서는 3일 동안 면접시험을 통해서 학생들을 선발했다. 당시 선발된 학생들은 모두 53명이었다. 

인도네시아교육대학교 어문학부에는 한국어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어, 영어, 일어, 불어, 독어, 순다어(인도네시아 순다족의 언어) 등의 전공학과가 있다. 과거에는 영어교육학과와 일본어교육학과가 인기가 제일 많았지만, 최근에는 영어교육학과와 한국어교육학과가 가장 인기가 있다. 이것은 한국어교육학과의 입학 경쟁률이 20~30대 1이 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어교육학과는 신생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두각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교수들은 이를 위하여 학생들을 전심으로 도와주었다. 그 결과 한국어교육학과는 인도네시아 전국 대학교 학과 평가에서 등급 B를 받았다. 등급 B는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신생 학과가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이었다. 

                                       아내 이전순 교수의 김치  특강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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