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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19. 2023

남편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처가댁을 찾아갔다





우리의 다툼소식은 친정엄마가 모두 꿰고 있었다.

남편은 늘 다툼이 있을 때마다 처가댁에 찾아갔다. 그게 새벽이건, 밤이건 낮이건 아침이건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이 소식을 딱히 전한 적이 없었다.

한 두 번 다투는 것이 아니었기에, 늘 있는 일이었기에, 다른 주제로도 다퉈보면 좋으련만 늘 매한가지 같은 이유로 같은 부분에서 다투어왔기에 굳이 말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지겨울 만큼 우린 그 변하지 않는 주제로 만 5년을 꽉 채워 다투어 왔다.










남편이 처가댁에 찾아간 이유는 억울해서 그리고 답답해서였다. 본인은 아내와 잘 지내고 싶은데 아내 입에선 늘 이혼소리가 나오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여태 살아오면서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대화법에 스스로 데어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를 모르기에 고칠 수도 없었다.



이혼을 한번 했는데도 문제를 몰랐던 이유는, 남편은 안타깝게도 전 부인을 사랑했는데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여서 혹은 버림받아서 이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아니니 그 상처에서 온 깨달음 또한 있었을 리가 없었다.

본인이 잘나서 전 부인이 결혼하자 했고, 제 풀에 꺾여 나가떨어진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혼'이 상처였던 이유는, 시부모님이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고, 주변에 뭐라 둘러댈 이유가 없어서였고, 이혼남이라는 타이틀이 씌워진 자신의 자신감에 스크래치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주 사소한 문제였는데, 남편이 출근준비를 하던 오전시간이었다.



3살, 5살 아이 등원준비하느라 내게 오전은 늘 바쁜 시간이다. 3살 아이가 자는 동안 소변이 흘러나와서 침구를 빨려고 빼고 있는데, 남편이 상의를 탈의하고 와서는 등에 로션을 발라달라는 것이었다.



굳이 그 순간에?



남편은 눈치가 없다. 아이가 3살, 5살일 때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도 오전시간에 얼마나 바쁜지도 본인이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를 만도 하지만, 적어도 눈치는 있어야 했다.

심지어 그 순간은, 아이 둘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떼쓰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오빠 눈엔 내가 지금 여유로워 보여? 오빠 등에 로션 바르는걸 지금 요구할 때야?"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화를 내!"



"부부가 아니라 남이라 해도 이 상황이면 침구 빼낼 수 있게 애들이라도 안아주고 있었을 거 같아

그런데 오빠는 지금 내가 바쁜지 애들이 울고불고 떼쓰는지, 보이지도 중요하지도 않아!

내가 아내로 보였으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오빠까지 거들라고 해! 당신은 내가 애 낳은 지 백일도 안되었는데 마사지해 달라고 하고, 새벽에 깨서 애 한 번을 안 봤으면서 수면부족인 나에게도 틈만 나면 마사지해 달라고.. 마사지받아야 할 사람은 나 아니니? 근데 이제는 로션? 애들 등원하느라 하나도 정신없는데 굳이 지금 로션?! 이게 무시한 게 아니면 뭐야!"



"내가 전에 만났던 사람들도 등에 로션 바르는 거나 마사지하는 거나 다 해준 것을, 무시라니? 너 그거 자격지심이야!"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전에 만났던 애들도 다 해줬다고?"



"그래! 다 해줬던 것들이야. 널 무시해서가 아니라 나에겐 익숙한 일이라고!"



"관계 전 단계가 마사지인걸 다 알고 있는데, 나는 평생 오빠랑 자야 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이런 말 듣고 내가 어떻게 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남편은 말실수를 했다.

차라리 그 순간 말이 헛나왔다고, 그 말을 하고 싶던 게 아니었다고 정정하고 같이 침구라도 빼내었다면, 아이들이라도 안고 서서 내가 침구를 다 빼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면, 그날은 안 싸울 수 있었을까?




남편은 본인이 한 말실수를 내게 자격지심으로 돌리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션과 마사지를 내게 요구한 것에 대한 나름의 정당성을 설명하여 나를 설득하면 실수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대체적으로 그랬다. 본인은 실수한 적도 나를 무시한 적도 일부러 상처를 준 적도 없었다.

스스로 합리화 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 본인이 실수한 사람도 무시를 준 사람도, 상처를 준 사람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합리화한 이유를 내게 설득시키려 몇 시간이나 잡아놓고 얘길 하는 사람이었다.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면 상처를 준 것도, 무시를 준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남편은 퇴근 길에 처가댁에 찾아갔다.



남편은 아내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아내는 무시받았다고 했고, 무시받는다고 느낀 네가 잘못된 거라고, 나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내게 로션을 발라주고 마사지를 해줬는데 그게 어떻게 무시한 거냐고, 내 의도가 무시가 아니었으면 너도 무시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설득시키려 했지만,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일을 여러 번 겪어온 친정엄마는 상황을 파악하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내 딸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런데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을 다른 사람까지 꺼내어 얘기하게 된 거야. 다음부터는 바쁘지 않은 상황에 관심받고 싶다고 표현해 봐. 자네는 그저 아내의 챙김을 받고 싶던 거잖아."




그 말을 듣고서야,

남편은 본인 머리에서 왜 그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본인이 원했던 게 무엇인지 느꼈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알고 있었다.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좋은 사위이지만, 모자란 부분이 이 부분이라는 것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말이다.





"몰라서 그래. 하지만 너를 정말 사랑하잖아. 이렇게 널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아. 그러니 모를땐 알려주려고 노력해봐. 그러면 너에게 백점짜리 남편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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