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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19. 2023

시댁의 하브루타식 대화법











본디 하브루타의 뜻은, 논쟁하며 진리를 찾는 교육방법이다. 그런데 이를 부부의 대화법에 적용하니 진리는 이미 저 편에, 내 말이 맞다만 목청 높여 소리치는 걸 보게 되었다. 그것도 40년 넘게, 5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계속해온 부부가 있다.

바로 나의 시부모님이다.






시아버지는 유대인의 하브루타식 대화법을 늘 강조하며, 옹호하듯 말씀하셨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하브루타 교육법은 익히 들어온 것인데, 그 단어를 시아버지 입에서 들으니, 아찔했다. 하브루타라는 단어 자체를 잘못 적용해도 단단히 잘못 적용하셨구나 싶었다.



시부모님을 딱 한 줄로 표현하자면,

'평생을 서로를 향해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늘 본인 의견만 옳다며 목청 높여 다툼을 한다. 그것이 손주들 앞이건 사위나 며느리 앞이건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서로의 의견이 서로에게 수용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에, 다툼의 시작은 두 분이 처음 삶을 꾸렸던 신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의 노고를 단 한 번이라도 인정받아본 적이 없기에 나올 수 있는 그 억울함으로 최근에 서로 맞지 않은 일이 있었더라도 시작은 늘 신혼 초부터 시작하신다.



대화는 수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내 의견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 의견대로 바뀔 필요는 없지만 그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대화의 수용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상대방 말을 전혀 듣지 않거나 비난, 배척하고 끝까지 본인 의견만 옳다고 말하는 것",

나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설득시켜야 하는데, 다툼이 다툼으로 끝이 나면 설득시킬 스킬이 부족해서라 여겼다.


그들은 그것을 "대화"라 칭했다.






한평생 그것만 보고 자란 남편은, 나에게 말은 "대화"라 하고 늘 변명에,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나를 설득시키기 위한 모든 말들을 꺼내어 싸움을 위한 싸움만을 하는 말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늘 그렇게 종료되곤 했다.


그러니 남편도 나도 사소한 다른 부분들을 조율해 보는 경험 없이 "다름"은 곧 "싸움"이었다.



'아, 내가 그런 면이 있지'

이런 사사로운 인정을 할 줄도, 이런 표현을 언제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시부모님을 7년간 매주 만나온 것이 남편을 이해하게 된 폭을 넓혔는지도 모르겠다.



남편 말로는, 본인이 중학생 때 친구 부모님이 손잡는 걸 보고, 어떻게 밖에서 손을 잡느냐고 저러다 경찰에 잡혀가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스킨십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그 흔한 고마워, 덕분이야 같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정"받는 단어조차도 나눠본 적이 없는, 싸움만을 위한 싸움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서로 수용해 본 경험이 없이, 본인들 할 말만 목청 높여 뱉어놓은 채로, 거기서 더 폭력이라는 단계는 밟지 않은상태로 있었기에 남편은 모두 다 이러고 사는 것이라고 배운 것이다.



나에겐 기상천외한 이 대화법이 남편에겐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화법이었다.



남편은 부부는 원래 다 싸우고 사는 거라고 했다.

나는 싸울 수는 있으나 응어리지지 않게 풀면서 서로 조율하며 사는 거라고 했다.



남편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이상만을 말한다고 했다. 싸움을 위한 싸움만 보고 자란 사람의 세계에서는 수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가 다툴 때마다 장모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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