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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30. 2023

치부를 인정하고 대화 곳곳에 드러내기

신혼일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신혼시절에 하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연애시절의 연장선으로 서로에게 본인이 갖고있는 가장 좋은 부분만을 보이려 하는 것 아닐까.

결혼 전엔 서로 멋있는 부분에 끌렸더라도 결혼 후엔 약간의 모자른 구석을 흘리며 서로가 서로를 챙길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게 전환이 되지 않아서 생긴 오해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상경계열을 졸업했지만 숫자는 아주 젬병이다.

남편도 상경계열을 졸업했지만 숫자에 강한 편이다. 아니, 강하다 못해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사사로운 일들도 수치화를 시켜야만 이해력이 생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국내파 경영학, 남편은 해외파 경제학을 학사학위로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외국계, 국내회사의 영업부 경력이, 남편도 동일하게 외국계, 국내회사의 금융 부서의 경력이 있다.



어찌 보면 둘 다 상경계열인데, 계산에 관련해서는 대화가 도무지 통하지를 않는다. 남편은 보통 몇천만 원 이상의 것을 구입할 때 견적서를 받아보면 그것을 엑셀 스프레드 시트에 나열하여 직접 계산하여 해당 회사 직원이 제대로 견적을 준 것인지 확인, 그리고 이율이 몇 퍼센트일 때를 가정하여 대안 1,2,3을 보여주고서는 내게 설명을 해준다.



올해, 차를 구입할 때 이야기다.



나는 차를 구입할 때, 해당 딜러사 직원이 견적서를 보내주면 몇 군데 비교해 보고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남편은 보내온 견적서를 가지고 계산을 해서 딜러사 직원에게 계산값이 이상하다고 다시 견적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재견적서를 받기도 했었다. 그 견적상의 오류와 함께 계산한 근거를 내게 설명을 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남편의 행위가 이해가지 않는 것보다 그 계산값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맞겠다.



"그러니까 이래서 이 금액이 나오고, 이렇게 되는 거야. 우리가 얼마를 이렇게 하고 이걸 이렇게 하면 이율이 이렇게 돼서...(중략)"



"오빠! 오빠 설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야. 내가 법 공부할 때도 처음엔 못 알아들어도 보다 보면 말 길을 이해해서 똑똑해진 기분이 들어서 좋았거든? 근데 이건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가서 내가 똥멍청이가 된 기분이 든다고! 나한테는 선수금이 얼마 필요하고, 향후 몇 년간 할부를 일으켰을 때 얼마를 내면 되는 건지, 그래서 총 차량가격에 이자를 포함해서 이 차를 구입하는데 드는 총비용이 얼마인지만 말해줘. 그래서 선수금으로 얼마가 있어야 우리 사정에 가장 적합한거야?"





예전 같으면 남편의 본인이 잘났다고 보이는 부분과 나의 희생이 직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남편이 무얼 설명하려 해도 듣고 싶지 않았다. 너도 네가 스스로 잘났듯이 나도 매우 잘난 사람이라고 내보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하는 행동은 마치, "너만 내가 잘난 걸 모른다"로 대하곤 했다.




그런데 오해를 인정하고 그 어렵던 시기를 거치고 나니 남편은 해당분야에 지식이 많고 그 지식에 대한 자신감도 있는 사람이었고 이제는 그 모습이 멋있게 보이기까지 한다.

결혼 7년 만에 처음 겪는다. 내 남편이 이리 잘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데 걸린 시간이 7년이었다. 어찌 보면 남편이 아닌 내가 보는 시각이 변해서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렇게 치부를 인정하고 대화 곳곳에 비추고 나니, 이제 우리의 다툼은 눈에띄게 줄었다.

오히려 남편도 내가 본인보다 못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하기도 하고, 나를 도와주려고도 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니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그 사람이 어려워하는 부분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 잘난 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다 망해봐야 알지'하면서 도움은커녕 악담을 퍼 부지 않는가.

우리 부부의 신혼생활이 딱 그랬다.




결혼이란 게 서로의 눈에 서로가 마음에 드려면, 어느 정도 서로 수준이 비슷해서 인 것을 제3자가 보면 보이는데, 막상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서로 적절한 배려를 받지 못하다고 느꼈을 때,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나도 잘난 사람이야!'를 내뱉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오고, 그런 감정이 대화 속 어느 단어에 꽂히면 순식간에 발화가 되곤 했었다.







남편이 이직을 앞두고 이력서를 쓰던 때였다.

남편의 10여 년의 경력이 인정되는 곳을 찾아야 했기에 일반 모집공고엔 뜨질 않아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녀야 했던 때이다.



남편은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써서는 내게 읽어보라고 주었다. 그런데, 내가 제3자로서 읽어보았을 때 '나는 이런 일들을 했고, 이런 마인드가 있기에 내가 너의 부서에 적합하면 함께 일하고, 말려면 말어라'라는 뉘앙스가 읽혔다.



"오빠, 이거 진짜 이런 뜻으로 쓴 거 맞지?"



"아, 티 났어?ㅋㅋㅋㅋ 신입 때나 이력서 써봤지 회사 옮기면서 한 번도 안 써봐서 뭐라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나는 관련부서의 사람도 아닌데, 글 자체로만 보면 이 사람은 그저 job을 구하는 거지, 이 회사에, 이 팀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거만해 보이기 까지 하는데? 좀 더 '해당 부서에 적합한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고, 나는 이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글을 다시 써봐. 그 회사를 안 가게 되더라도 선택권이 오빠에게 있어야지 회사 쪽에 있으면 자존심 상하잖아"



"10년 전에 했던 것부터 기억해서 쓰기가 쉽지가 않네. 경력기술서를 써본 적이 없어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오빠가 기억나는 큰 프로젝트 몇 개만 써봐. 가장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왔던 것 몇 가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하지 뭐, 안되면 때려치워! 우리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지금 대출 나가는 거 다 껐는데, 네 식구 먹을 생활비만 나오면 살잖아. 나랑 뭐든 하면 우리 네 가족 입에 풀칠 못하겠어?"




이제는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순간, 치부를 들켰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야 가족이 되었기에 모자란 부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나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그것으로 내게 생채기를 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생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런 감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데에는 아이의 양육이 가장 컸다.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어야 하지 않던가. 한 번에 알아듣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기억을 할까 말까 하기에 그 기준을 남편에게도 적용하니 조금은 여유롭게 남편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아이들의 실수는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반면, 우리 부부는 서로의 실수에는 너그럽지 못했기에 같은 눈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먼저 나의 모자람을 대화 곳곳에 티를 내기 시작하니 남편 또한 본인을 내려놓아도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이건, 가정에서는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인정해 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밖에서 받고 온 상처를 고스란히 가정에 드러내놓고 치유가 되어야 본인의 역량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과거의 남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본인의 위치보다 더 내게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니 집에서도 그 무거운 사회의 갑옷을 벗질 못하고 있으니 쉬질 못했고,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내비칠 것 같은 땐 방어기제를 먼저 내세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빈 수레가 요란하네'라고 받아들였다.




서로를 이해하는 눈으로 보려 하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면과 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크게 소리로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마치 큰 소리를 쳐야 상대방에게 나의 의견이 가장 잘 들어먹힐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고 그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이라서 라는 생각보다는, 좋게 설명했을 때 단 한 번도 의견이 받아들여진 적이 없기에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구나 라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얻어진 덤은 바로 이해의 눈이다. 어쩌면 나는 사람 자체의 다채로움을 본 적도, 받아들인 적도 없이 살아왔었는지도 모른다. 한 단계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는데 필요했던 건 결혼과 출산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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