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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Aug 09. 2023

정신과는 비정상인에게 상처받은 정상인이 가는 곳이에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다



남편만 보면, 희생을 강요당했던 내 앞에서, 내가 힘들다고 말할때마다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받아치며

본인 억울한것만 한보따리 푸는 저 사람의 입술만 보면 분노가 들끓었다. 그 분노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것을 집어삼킬정도의 분노였고, 시간이 갈수록 수위는 커졌기에 스스로 약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그간 정신건강의학과에 부부상담으로만 가봤었지, 나의 화를 다스려보려고 찾아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 약 처방을 원한다고 대뜸말했다.



"선생님, 제가 화에 집어삼켜질 것 같아요. 진정시킬 수 있는 약처방이 필요해서 찾아왔어요"



필요한 약처방을 내릴테니, 우선 나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7년간의 결혼생활중에 남편의 무신경함에 희생받았던 육아,시댁문제, 그리고 시어머니에 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물어보았다.



"선생님, 저 억울하다고 느끼는게, 양가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았거든요. 이런 얘길 들으면 대부분 지원 받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데요"


"네, 저도 그럴거라 생각하며 들었는데 아니네요"


"7년간 매 주말마다 시댁을 만났어요. 이것도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게 맞죠?"


"네? 7년간을 매주요?... 일반적이진 않죠"



덤덤한, 마치 공학도같은 분위기의 선생님은 눈이 동그래지셨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기분이 좋아요. 한번도 안좋았던 적이 없어요. 아이들을 볼때도, 다른 사람들을 볼때도요. 그런데 남편, 단 한사람에게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듯이 올라와요. 이거, 분노조절장애인가요? 우울증인가요?"



"아니요. 분노조절장애도, 우울증도 아니에요. 대부분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들에게도 신경질적이 되어서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오시는 분들에게는 우울증 약을 처방합니다. 또, 분노조절장애는 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네요. 보통 이런 병적인 특성은 본인상태를 뭉뚱그려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환자분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한 바를 상대방에게 적절한 표현을 써서 설명하는데 재주가 있으세요. 단어들도 적절하게 맞는 단어만 사용하셨구요. 혹시 심리학 관련 일을 하시나요?"



"아니요. 심리학 관련 일은 아니지만 책 읽고 글 쓰는걸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제가 보통 상대방에게 저의 의견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불통인 느낌을 받아본적이 없는데, 왜 남편은 제 말을 듣지않고 자기 억울한것만 이야기할까요?"



"... 보통은 부부간의 문제에 있어서, 아내분들이 상황을 '답답하다, 화가난다, 짜증난다'식으로 말씀하시고 남편분들은 아내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단 느낌이 들어 상담을 받으시긴하는데, 저는 환자분 이야기가 아주 잘 이해가 가거든요. 그래서 남편분이 궁금합니다. 혹시 남편분도 내원 가능하실까요?"



"네, 내원하는건 문제없어요. 그런데 저, 이 들끓는 화를 좀 진정시켜줄 수 있는 약은요? 약처방 받고싶어요"



"음.. 제가 보기엔 병적인 특성보다는, 남편분의 생각을 제가 들어보고, 여러번 내원하셔서 시간을 갖고 문제를 좀 해결해나가는 방법이 더 맞는것 같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비상약처럼 처방은 드릴 수 있습니다"



"네, 비상약 개념으로 처방받아갈게요. 선생님, 저는 저의 이 상황이, 이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헤어지질 못하고 살아야하기에 정상이였던 제가 비정상이 된것만 같아요. 제가 느끼는게 맞나요?"


"네, 제가 들어보기에도 그러네요"


"선생님, 이런 경우엔 이혼이 답인가요? 이혼하면 제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이혼이 답인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안하는 쪽으로 한번 상담계획을 세워보죠"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남편은 단번에 yes를 외쳤다.

딱 내 남편 답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본인은 부족한게 조금 있을뿐인데, 이혼당할만큼 잘못한적이 없는데 아내는 이혼을 입에 올려야만 살 수 있는 이 삶이 너무도 싫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건 사람다운 대화였고, 남편은 나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이 삶이 더할나위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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