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는 청년농부 조니
청년농부로서의 삶을 결정하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위해 가장 먼저 선정한 작물 중에 하나가 바로 감자이다. 감자를 선택한 이유를 돌이켜 보았을 때 유년시절 새벽녘 냉기가 가득한 이슬을 맞으며, 할머니 등쌀에 못 이겨 떠지지도 않는 두 눈을 반쯤 감긴 채 밭으로 이동하였다. 그 새벽녘 어깨와 정강이에 번갈아가며, 하이파이프 하던 풀잎들의 차가운 아침인사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당시 맞은 이슬의 상쾌함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거부감 없이 감자라는 작물을 선택한 것 같다. 감자를 심기 위해 필요한 씨감자를 신청하러 단구동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했다. 씨감자, 퇴비 등 한 해 농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신청하려고 방문했으나 그 당시 나에게는 농업경영체라는 것이 없어서 신청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씨감자의 경우 나중에 취소하시는 분이 발생하게 되면 따로 연락을 주신다고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취소하신 분이 계셔서 20kg 씨감자를 구입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행정복지센터에 농정을 담당하시는 분께서 하신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단구동에 이제 농사짓는 분들의 거의 안 계세요." 불가 10년 전에도 단구동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택지개발로 어느 순간 농지들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홀로 남겨지는 기분이 들어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감자를 심고, 가꾸고, 캐는 기간은 길고도 짧은 여정이다. 밭에 퇴비를 뿌리고, 경운기로 로터리 작업을 하고, 관리기로 골파기 작업을 하고, 비닐 멀칭작업까지 마치면 드디어 감자를 심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혼자 밭에 나가서 위 과정을 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의미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녘에 먼저 일어나시고, 준비하시는 할머니 근처로 괜스레 지금 막 일어난 티를 굳이 숨기며, “할머니, 더 뭐 챙기면 되나요?”하면서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농사 준비 물품을 챙기며, 아침을 시작한다.
할머니와 함께 밭에 나가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그저 일하는 시간이 아닌 할머니와 함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 된다. 옛날이야기를 여쭤보면 50년 전 이야기 상자도 바로 꺼내서 추억을 공유해 주신다. 그 소중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옛날 할머니의 추억 이야기는 다시 나의 추억 상자에 고이 간직된다.
올해 감자의 예상 목표 수확량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그 이유는 극심한 가뭄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씨감자로 선정한 수미 감자가 질병에 약해 썩어 있는 감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자를 캐는 시간 동안 멀리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할머니의 한숨소리는 나의 귓속에 동굴 속 메아리 소리처럼 증폭되어 다가왔다. 감자를 캐다 말고, 나는 할머니 근처로 다가가면서 이야기했다. “할머니, 그래도 씨값은 빼서 다행이다. 그렇죠?”라고 하니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속도 좋다.”라고 말씀하시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셨고, 그 말 한마디에 할머니께서 조금은 실망한 기분이 풀리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할머니의 한숨과 미소가 중첩되어 담긴 상태 좋은 감자를 10kg, 20kg 분류하고, 20년이 넘은 단골 고객들의 집 앞까지 배달하는 과정까지가 감자 농사 여정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첫 감자 농사는 극심한 가뭄으로 만족스러운 수확량을 얻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과 청년농부 조니의 첫걸음, 첫 시작으로는 풍족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농사를 짓는 것은 인생과도 같다. 길게 내다보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 당시 순간적인 감정으로 실망하고, 포기하면, 다음 농사 일정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최대한 빠르게 인정하고,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현명한 농부가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