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는 청년농부 조니
부락이라는 명사의 어원은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을 뜻한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현재 나의 세대까지 삶을 터전을 이루고, 살아온 어린 나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 바로 귀론부락이다.
그 귀론부락의 매년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고, 새끼를 치던 시끌벅적 복 많던 기와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형과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느껴진다. 마당에 파란색 파라솔을 하나 펼쳐 놓고 큰 고무다라에 물을 받아 형과 사촌들생들과 물놀이하던 추억, 마을 친구들과 논두렁을 돌아다니며, 물방개와 올챙이를 잡던 추억, 마을 어르신들을 뵈면 항상 밝게 인사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추억까지 아직도 그 상황 속에 어린 시절 나의 시점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옆집, 앞집,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 이웃 같았던 정 많던 귀론부락이 도시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오게 되면서 보상이라는 명목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말았다. 과연 그 보상금이 마을 사람들의 추억까지 모두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대로 살아오시던 분들이라 그분들도 귀론부락에 많은 추억이 존재하고, 연세도 있으셔서 떠나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또한, 마을에 경사나 비보가 있을 때 모두 자기 집안일처럼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주시던 마을 어르신들의 유대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귀론부락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마을 분들이 한분 두분 떠나실 때 마을 곳곳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중에는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원”이라고 불리던 저수지에서 안타까운 나의 심정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내가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나의 추억이 소중한 만큼 마을분들께서도 귀론부락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매개체를 남겨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론부락 곳곳에 위치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토지에 같은자리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지어 오셨던 선조들의 땀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이 앞으로는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 싶었기에 농사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고조부모, 증조부모, 할아버지 산소가 옆에 위치한 고구마가 심어진 밭에 갈 때 더욱 그 감정이 고조된다. 밭일을 하면서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시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지만 할머니께서 하시던 말씀 중에 하나가 “조상님들 우리 손자 농사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잘 되게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세요.” 하시는 말씀이 손자를 사랑하시는 할머니의 진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의미가 가슴 깊이 고이 전달되어 나를 더욱 울컥하게 만들었다.
많은 추억이 녹아있는 귀론부락에서 농사짓는 기간이 몇 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추억을 상기하고, 잊지 않기 위해 치유부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앞으로 치유농업, 농촌체험, 농촌민박, 관광농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농촌에서 느낄 수 있는 정과 여유를 통한 온전한 쉼을 누릴 수 공간으로 만들어 현대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 회복과 농촌사회가 다시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다. 사업 준비와 함께 농사를 짓고, 글을 짓는 하루하루가 발전하는 청년농부 조니로서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