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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May 15. 2022

얼굴을 마주하면 오해가 줄어든다

이해가 안 되네. 왜 항암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건지.
  

수술 후 1년 6개월 사이에 두 번의 재발로 완치의 길은 멀어지고 있었다. 재발이 확인될 때마다 항암 치료는 바뀌었다. 그럼에도 조금 더 우리 곁에 있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먹는 항암제에서 다시 주사 항암제로. 새로운 치료를 앞두고 있었다. 항암치료 전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증가되어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백혈구 수치 증가는 몸에 염증이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런 상태로는 항암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몸에 염증이 있을 거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에, 온 가족이 아버지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 다래끼가 있고, 습진이 있기는 했지만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를 증가시킬 만한 원인은 아니었다. 높은 백혈구 수치와 대조적으로 열, 통증과 같은 다른 증상이 전혀 없었다.


주치의는 일시적일 수 있으니 시간을 두고 잠시 경과를 보자고 판단했지만, 2~3주가 지나도록 백혈구 수치는 감소하지 않았다. 하루가 소중한 암 환자의 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항암치료가 개시되기를 바랐다. 항암 치료가 미뤄지자 보호자인 남편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니 주치의의 결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의 판단도 남편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대학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79세의 시아버지 상태를 전해 들은 것은 보호자는 73세 시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주치의와 남편.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나는 남편에게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기를 권했다. 남편은 시간을 쪼개어 아버님을 모시고 외래를 방문했다. 주치의와 면담 끝에 입원하여 백혈구 증가의 원일을 찾는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얼굴을 마주하면, 오해가 줄어든다. 


의심이 들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의사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보호자가 내원한다고 환자의 치료 방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 든 보호자분에게 설명하는 것과 젊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그 결이 다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의사가 할 일이나, 본질에 근접하기 위해 어려운 말이나, 영어, 의학 용어 사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를 어르신들에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젊은 보호자에게는 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부모님의 치료를 맡아주는 의사가 있다면, 직접 환자 상태에 대해 들어보고 치료 방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환자 보호자와 의사는 얼굴을 마주하면 모두의 공동 목표인 환자의 건강에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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