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폐의 절반이 잘려나간 후 아버님은 기침이 잦아졌다. 어머님은 기침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 몇 가지를 알고 있었지만, 아버님은 이미 기침을 조절하는 모든 약을 복용 중이었다. 마약성 진통제까지 포함하여 전부 다. 더 이상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은 의미가 없었다.
아버님은 식사 때마다 사레에 잘 들렸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기도가 자극되는 것 같았다. 기침은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심해졌다.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는 기침으로 아버님은 어느덧 스스로 가족들과 식탁에 함께 앉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자발적 거리두기를 자처했다. 환자들의 삶은 고독하기 마련이라지만 홀로 떨어져 식사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님과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평범한 내과 의사인 나는 기침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신 기침을 유발하지 않게 하는 음식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불현듯 잡채가 떠올랐다. 잡채는 맵거나 뜨겁지 않아 기도에 자극되지 않는 음식으로 국수를 좋아하는 아버님에게 딱이었다. 잡채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나 역시 굉장한 잡채 러버다.
가장 먼저 잡채의 주 재료인 마른 당면을 30분간 찬물에 담가 놓는다. 당면을 찬물에 불렸다가 사용하면 면이 붇지 않고 당면을 삶을 때 조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당면이 찬물 사우나를 하고 있는 동안 잡채에 들어갈 각종 야채를 준비한다.
야채는 잡채의 비주얼을 담당하기에 중요하다. 냉장고를 털어 사용 가능한 모든 색을 동원한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빨간 파프리카, 노란 파프리카, 주황의 당근, 하얀색의 양파, 갈색의 표고버섯, 초록색의 부추가 그들이다. (시집온 뒤로 시금치는 왠지 꺼리게 되어 초록색 채소의 대표 식재료 시금치 대신 부추를 사용하는 편이다.)
부피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파프리카를 먼저 손질한다. 빨간 파프리카의 리코펜은 우리 몸의 유해 산소 생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암과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고,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베타카로틴이 포함되어 있다. 노란 파프리카는 생체 리듬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양파와 당근을 가지런히 채 썬다. 양파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널리 사용된 식재료로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려 한식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육류의 냄새를 없애고 풍미를 더해준다. 팬에 기름을 넣고 볶으면 알싸한 매운맛이 사라지고 단맛이 난다. 조리하지 않아도 달콤한 맛과 향긋함이 베어나는 당근도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아주면 달큼함이 배가 된다. 작은 종지 물에 불린 마른 표고버섯도 조리한다. 표고버섯은 암에 대한 저항력과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면역력을 강하게 해 준다. 이들 양파와 당근, 표고버섯은 잡채의 풍미를 높이는 천연 조미료 (MSG) 역할을 한다.
각종 채소들은 귀찮아도 각자의 천연색을 유지하기 위해 따로 볶아야 한다. 잡채의 특징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기에 설익은 당근과 덜 불려진 표고버섯은 퇴출되어야 한다. 과하지 않지만 충분하게 조리할 것을 권한다.
탄수화물로 이뤄진 잡채에 유일하게 단백질을 제공하는 고기는 필수다. 잡채에 들어가는 식재료 답게 길쭉하게 썬 잡채용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후추로 밑간 한 돼지고기를 달달 볶아 한 김 식혀둔다.
마지막으로 잡채의 주인공인 당면을 삶아준다. 충분히 불린 당면을 뜨거운 물에 5분 정도 삶아 부드러워진 것을 확인한다. 모든 것을 담아도 좀처럼 넘치지 않는 웍에 식용유, 설탕, 간장을 넣고 삶아진 당면을 볶는다. 이렇게 볶아진 당면은 간이 적당하게 배어 불지 않고 윤기가 흐른다. 간장, 설탕으로 양념된 당면이 완성되면 이미 볶아진 채소들을 넣고 슬쩍 볶는 듯 마는 듯 섞어준다. 초록색 대표 식재료인 부추는 산채로 슬쩍 넣어 준다. 잡채의 뜨거운 잔열로 익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고소한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접시에 담아 통깨를 뿌리면 잡채가 완성된다.
나는 모든 식재료들이 한데 어울려 아버님의 면역력 회복을 돕기를 항암 치료 중 떨어진 입맛을 돋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뜨겁지 않고 식어도 맛있는 잡채. 맵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잡채 하나로 아버님의 기침은 여느 때보다 잦아드는 것 같았다. 호로록. 호로록. 아버님은 막내며느리의 잡채를 잘도 드셨다. 아버님은 잡채 한 접시 더를 외쳤다.
나 대신 아버님의 기침을 멈추게 한, 빨주노초 형형색색의 예쁜 잡채가 기특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