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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May 07. 2022

반만 의사 노릇 하기

환자가 되거나 환자 보호자가 되면 반 의사가 된다. 


" 아버지 표적 치료해달라고 해 "


아버지의 치료에 있어 세상 최고의 치료법을 구하는 것은 효자인 남편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폐암 환우 카페에 들락거리고 드디어 반 의사가 된 남편이 말했다. 아버지에게 최고로 도움 되는 치료법을 찾은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아들에게 그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는 그대로 주치의에게 전달했다. 주치의는 아버님은 현재 표적 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무안하게 했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는 반쯤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 어떤 질병인지,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안다는 것은 환자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반 의사가 되는 일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하지만 딱 반만 의사가 되어야 한다. 


일반인은 전문가의 수십 년 내공을 하루아침의 노력으로, 밤샘 인터넷 조사로 완벽하게 쫓아갈 수 없다. 보호자는 폐암 환자 한 명을 알고 있을 뿐이지만, 의사는 당신이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환자를 만나고 있다. 


의학적 판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환자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아버님의 폐암이 재발했을 때 나는 아버님이 안쓰럽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마음부터 아팠다. 하지만 주치의는 해결해야 할 잔존 폐암 덩어리가 연상되었을 것이다. 보호자가 환자에 대한 연민으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의사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환자를 객관적으로 보고 다음 계획을 세운다. 


나는 이 집안의 유일한 의사로 시아버지가 폐암을 진단받고서야 모두들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남편을 포함한 이 가족에게 큰 파도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주치의가 하는 치료에 조금이라고 궁금한 점을 내 비치면, 다들 눈빛이 달라지곤 했다. 말 한마디로 주치의와 보호자 사이의 신뢰를 깰 수 있었다. 


의사지만 나는 이 집안에서 며느리 노릇이 우선이었다. 폐암 환자의 보호자, 이 집의 며느리 노릇을 하기 위해 나는 반만 의사가 되기로 했다. 한 명의 의사가 반만 의사가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힘을 빼야 한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 논문을 찾아보고 최신 치료법에 대해 찾아보고 거기서 멈추었다. 아버님에 대한 치료 결정은 주치의 의견이 우선이었다. 


누구나 반쯤 의사가 되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온전한 의사가 되어 자신의 판단으로 환자를 몰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구하기를 추천한다. 나는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 동료 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반의사에서 의사가 되는 대신 또 다른 의사를 앞세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반이냐는 것이다. 힘을 잘못 빼다가 무심한 의사 며느리가 될 수도 있을 테니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치료의 큰 결정은 주치의 선생님께 맡기고 사소한 부분에 더 신경 쓰는 것이었다.


환자에게는 해결해야 할 큰 돌과 작은 돌이 있다. 둘 다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주치의의 치료 계획은 큰 돌이다. 나의 관심은 큰 돌이 아닌 작은 돌들에게 있었다. 아버님에게는 이미 있던 작은 돌들도 적지 않았다. 큰 돌이 부서질 때 작은 돌들을 만들곤 했다. 그것은 항암 치료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생활 속의 소소한 불편함 들이었다. 변비, 소화 불량, 혓바늘, 발톱 무좀 등에 대해 물어보고 살피는 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사소하지만 그 정도의 의사 노릇으로 만족해야 했다. 언제까지나 반 만 의사 노릇하기.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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