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앞둔 노인이 폐암을 진단받았다. 의학적으로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노인이 이런 과정을 거친다. 다들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가련한 이야기가 많았다. 30대에 위암을 진단받고 5살 아들 몰래 병실에서 숨죽여 울던 아이 엄마. 자신이 왜 아파야 하는지, 왜 팔에 주사를 꽂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소아암 환자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날 만큼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에 비해 80세 노인의 암 진단은 의학적으로 보통의 일로 치부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아닐 것이다.
생의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이렇게 애통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시아버지. 그는 소멸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떠나기로 작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환자들 앞에서 늘 무감한척했던 나는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의학 정보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환자가 연륜이 있어 보이는 의사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의사의 삶도 쌓아진 나이만큼 인생의 다양한 맛, 심지어 쓴맛까지도 경험해 본 사람이길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종착점을 향해 가는 시아버지를 보며, 끝내 떠나 버린 아버님을 통해 나는 인생의 쓴맛 하나를 추가했다.
의사 그리고 며느리로서. 냉정하면서도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2년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