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정해진 이야기의 시작
2020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원인 모를 폐렴으로 뒤숭숭한 날들이었다.
- 아버지. 날이 밝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겠어.
쿵. 화장실에서 무언가 크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든을 코앞에 둔 180 센티미터가 넘는 시아버지였다. 정신력 하나만큼은 붙잡은 덕에 머리 만은 땅에 닿지 않아 다행이었다. 세면대 끝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새벽녘에 큰 아주버님으로부터 온 급전(急電)이었다.
8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은 시아버지는 누가 봐도 건장한 어르신이었다. 생물학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젊은이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건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농사일을 하며 잔 근육이 발달한 아버님은 구릿빛 피부에 뱃살 하나 없었다. 본인은 아들 셋을 낳았지만, 줄줄이 딸 손주만 얻었던 시아버지는 아들 손주 없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몇달 전, 미국에 사는 큰 아주버님이 아버님의 평생소원이었던 아들 손주를 뒤늦게서야 안겨 드렸다. 미국에 도착해서 꿈에만 그리던 손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버님은 골방에 누워있기를 더 좋아했다. 미국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알맞게 차려진 밥상도 거부하기를 며칠째. 결국에는 욕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미국 방문 한 달 만이었다. 아버님은 예정대로라면 한국의 혹한을 피해 봄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급하게 인천행 비행기를 끊어 조기 귀국하게 되었다.
인천 공항은 드문 인원만이 드나들고 있었지만, 삼엄한 분위기였다. 우한 폐렴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만난 남편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미국에 있는 큰 아주버님으로부터 모든 상황을 전달받은 나는 무엇이 아버지를 쓰러지게 했는지 생각했다. 쓰러질 때 몸을 떨었다는 것으로 가장 먼저 뇌졸중을 의심했다. 현재 어지럼증 증상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신속한 검사가 필요했다. 서울 시내의 2차 병원을 추천했다. 어지럼증으로 유명한 이 병원은 일단 들어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곧장 달려간 그 병원에서 당장 입원장이 발부되었다.
퇴근 후 아버님을 뵈러 병원을 방문했다. 6인 병실 가득 우한 폐렴 뉴스가 특보로 방송되고 있었다. 모두가 하릴없이 뉴스만 바라봤다. 아버님은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걸 터 앉은 채 애써 웃음을 짓고 계셨다. 편히 누워계시라는 말에 이 자리는 내가 누워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라고.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연신해댔다.
내가 기억하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불과 한 달 만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보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나는 의사의 직감으로 보통 일이 아님을 예감했다.
입원과 동시에 혈액, 흉부 엑스레이 등 각종 기본 검사가 진행되었다. 나는 이 집안의 유일한 의사로 모든 검사의 결과는 나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 혈액검사에서 염증 수치는 정상의 40배가 넘었고, 빈혈이 상당했다. 정상을 벗어난 혈액검사는 아버님 몸속에서 심각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지막으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열었다. 크고 하얀 덩어리가 얼핏 봐도 5cm 은 넘어 보인다. 3살 딸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흉부 엑스레이에서 덩어리가 발견되면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다. 폐렴, 결핵, 그리고 폐암. 최악은 폐암이고, 차악은 폐렴이었다.
나는 제발 폐렴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