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을 무기력하게 만든 정체가 궁금하다
영상학적으로 보이는 덩어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면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 덩어리의 성상에 따라 치료와 예후는 달라진다. 염증 세포가 나오면 폐렴 치료를, 결핵균이 나오면 결핵 약을, 암세포가 발견된다면 그는 폐암 환자가 된다. 따라서 조직 검사는 첫 번째 스텝이다.
폐 덩어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피부 바깥쪽에서 바늘로 찌르는 것. 두 번째는 몸의 안쪽인 기관지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크기와 위치, 환자의 상태 따라 달리 사용한다. 마지막은 앞의 두 방법이 여의치 않은 경우로 수술로 직접 덩어리를 떼어 확인한다.
시아버지의 경우 덩어리의 크기가 6cm으로 크고 폐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앞선 두 방법 모두 가능했다.
가장 먼저 피부 바깥쪽에서 바늘로 찔러 조직을 얻는 방법을 선택했다. CT로 병변의 위치를 확인하며 진행한다. 덩어리에 접근하기 위해 가느다란 바늘이 폐의 일부를 뚫고 지나가는 이 방법은 폐 기흉이라는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지의 경우에도 조직 검사 직후 기흉이 발생했다. 기흉의 치료는 산소 주입으로 폐가 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퇴원이 이틀 연장되었다.
조직 검사 결과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뒤면 나온다. 머지않아 아버님을 무기력하게 했던 녀석의 정체가 밝혀진다.
- 조직 검사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나는 절망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었다. 덩어리가 큰 경우 괴사 된 부분이 많아 바늘로 찌른 조직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첫 번째 스텝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다시 또 첫 번째 스텝을 밟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입원에서는 첫 번째와는 다른 방법, 기관지 내시경으로 조직의 일부를 떼어냈다. 조직 검사 결과는 환자를 담당한 주치의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는 여러 번 떼어내 진단 확률을 올렸을 것이다.
- 두 번째 조직 검사 결과에서도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까지 같은 결과가 나오자, 정말 암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이 말하는 예외적인 일들을 나도 경험해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떤 것이라도 하루 빨리 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해야 했다. 조직 검사로만 몇 주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조직 검사 방법인 직접 덩어리를 떼어내어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진단 및 치료 목적으로 흉강경 하에 폐엽의 일부를 절제하게 되었다. 수술장에서야 덩어리의 정체가 확인되었다.
이변은 없었다. 진행된 폐암 3기였다. 아버님은 폐암 환자가 되었고, 우리는 폐암 환우 가족이 되었다.